각자 처한 환경에서 최고로 도와주신다(서운함과 섭섭함은 독약과 같은 것)

2011-01-18 01:41:09
조회 488 추천 198

큰일은 도와준 것이 금방 생각나고 깨달아 알게 되지만, 작은 일은 도와줘도 잘 모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도와주었으면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다 큰 것으로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서 돕고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령, 혼자 밤길을 갈 때 꼭 누구를 보내줘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처지라면 자신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주심으로 도우시고, 천사도 동행하게 하십니다. 또 어느 때는 거기 있는 자를 통해 돕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마음속에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힘든데 자기를 위로할 자가 없어 힘들어 할 때 깨닫게 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힘내.”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꿈으로 보여 걱정이 안 되게 해주시고, 어느 때는 한 입 먹을거리를 주면서 주님이 챙겨주심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 해당되게 돕기 때문에 별 표가 안 납니다. 작지만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었어도 해결되니, 작지만 감사하고 기뻐하며 영광 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겪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을 받았어도 말로 깨우쳐주기 정말 힘든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 한 번 더 이야기해주겠습니다.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지금도 포도가 있을까?’하고 숲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때가 지나 반쯤 물기가 빠진 마른 포도송이 몇 개를 찾아 따먹게 되었습니다.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너무 양이 적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환경 상 더 이상 포도를 찾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경 따라 주시는 것이니 「줄 수 없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련을 두고 1시간 동안 더 사방을 돌아다녔는데, 마른 포도 한 알을 더 찾지 못했습니다. 그 환경에서는 없어서 더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최고로 도와주신 것입니다. 철이 지나 마른 작은 포도를 찾아 먹게 했어도 그 환경에서 최고로 주신 것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그같이 환경 따라서 주기에 작은 것을 주었어도 큰 것으로 알고 주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심정 모르면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니다. 지체는 같이 느낍니다.

 

- 하나 더 이야기할까요? 들으면 모두 주님의 사랑에 가슴 뜨끔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극적인 어려움 속에 정말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면서 보내던 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먹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도 없이 살 때였습니다. 내 그릇에 밥과 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을 떠주는 아주머니가 국을 세 번, 네 번 저었는데 건더기가 뜨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고깃국이었습니다. 다시 저으니 수제비만한 고기가 한 덩이 떴습니다. 그것을 내 국 그릇에 넣어주었습니다.

 

‘아무리 저어 봐도 더 없구나.’하는 소리가 번개처럼 선연하게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심정의 소리였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소리였습니다. 식사를 갖다 놓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너를 사랑하는데 내 심정 아느냐. 내 앞에서 무슨 한숨을 그리 쉬느냐.”했습니다. “이 환경에서는 더 건더기를 찾을 수가 없구나.”하셨습니다. 참 지극히도 챙겨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으니 주님이 그같이 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도와주니 걱정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주님은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하지요?

 

 그때부터 나의 한숨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세상 그 아무도 네게 안 와도, 내가 오면 최고다.’하는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극히도 챙긴다.」는 시를 머릿속에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주님은 모든 인생들을 지극히도 챙겨주십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불만입니다. 챙긴다는 말을 깨달았지요? 작아도 큰 것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주시어 그 환경에서 우리들이 처한 어려움과 각종 처지에서 최고로 도우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은 그같이 해주셨습니다. 모두 주님이 이같이 역사하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동안 이같이 역사하신 주님의 심정과 사랑을 모르는 자들도 이제 알았으니, 감격하며 주님에 대해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대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챙겨주십니다. 작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는 모래 중에 큰 것 하나를 쥐어 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왕 도울 바에야 돌을 주워 주시지.’합니다. 큰 것을 받아야만 큰 것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주시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받고도 고맙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만 합니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도우시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때 더 크게 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그같이 행하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한숨 쉬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 주관권이고, 불만과 한숨과 원망들은 사탄 주관권의 세계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나 죄 값 받는 거야.’하기 시작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까지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운함과 섭섭한 마음은 독약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도 절대 그같이 생각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그 같은 마음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여 순리적으로 자기도 자기 것을 얻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남처럼 자기도 똑같이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개성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사명하고 살면 됩니다. 자기가 구하지 못해서 못 받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는 다른 것을 주기 때문에 못 받는 것도 있습니다. 많이 맡은 자는 많이 해야 되고, 적게 맡은 자는 적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아 크게 하고, 자기는 적게 받아 작게 밖에 못한다고 비교하면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며 하나 되어 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정을 모르는 자요, 지체가 주님과 붙어 있지 않은 자입니다. 가르쳐주었으니 알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 <2009년 1월 25일 주일말씀>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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