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14 전미정 순회사님 말씀
오늘 제가 전해드릴 말씀은 말씀이 아니라 계시말씀이 심정의 말씀이 두 편 있어요.
첫째는 ‘비와 바람’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제가 받은 말씀이고, 또 하나는 ‘기질’ 이라는 말씀인데, 이 ‘비와 바람’은 자연현상을 통해서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예수님의 심정을 감동으로 받은 내용이구요, ‘기질’이라는 것은 제가 순회사 사명을 받게 된 것에 대해서 기도 가운데 여쭤봤을 때 예수님께서 저에게 순회사 사명을 주게 된 것은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준 것이고, 너에게 갖고 있는 기질이 어떤 게 마음에 든다’ 고 하시면서. 또 섭리의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질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원하시는 심정의 단장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내용이 핵심적으로 들어있는 것이 바로 ‘기질’ 이라는 시의 심정의 글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읽기 전에 몇 가지 이번 심정의 글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 먼저 언급을 한 다음에 내용을 읽어드릴게요.
제일 처음에 사람들이 궁금해 했던 게 예수님의 글을 어떻게 받는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날마다 오셔서 직접 오셔서 전해 말씀을 전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단순히 감동받아 쓰는 것인지 여러 가지 입장이 있었습니다.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준비가 되지 않아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주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지만 실상은 모든 섭리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거든요.
4월 23일날. 선생님 사건을 두고 주셨던 말씀들. 또 5월 7일날. 5월 8일날도 버스타고 가고 있을 때 직접 오셔서 주신 말씀이구요.
이 때는 예수님이 직접 오셨을 때는
4월 23일 같은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건에 대해서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듣기만 했다가 나중에는 적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 듣고 나중에는 들리는 것을 계속 울면서 기록을 했거든요.
그 때는 안 빠트리려고 끝가지 적었는데, 원래 예수님이 오시면 제 몸이 영적 현상이 있어요. 가슴이 숨이 꽉 막힐 정도로 온몸을 부여 잡는 듯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이것을 적는다는 것이 저의 노력이 상당히 필요해요. 그때는 제가 예수님께 주로 질문을 던져요. 대화체로 하거든요.
‘이 때’ 라는 시는 길잖아요. 이 시는 질문하고 받고 하는 식으로 써 질수가 없어요. 오셨을 때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거든요. 단편적인 경우는 몰라도 긴 글들은 나오기가 어렵고, 직접 오셨을 때 외에 영감을 받았을 때 이런 메시지들이 오는데, 주로 30분에서 1시간정도 받아서 적게 되요.
제가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참 열심히 읽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정석을 하면서 읽고, 메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에 대해서 분별력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럴 때 감동이 오면서 예수님의 심정세계가 느껴지면서 글이 나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글을 또 읽어요. 저에게 주셨어도 잊어버릴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때 읽으면 감동이 또 밀려와요. 그러면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고백하고 감동을 느끼는 순간 또 예수님의 심정적인 글들이 저에게 들려 오는 거예요. 그리고 자연을 통해서 자연의 여러 가지 현상들, 바람이 불어온다거나, 비가 내린다거나, 또 하늘이 갑자기 비가 내렸다하는.. 지난 주 였던가요? 사람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는것처럼 하늘이 갑자기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 또 하늘이 요동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러하신가? 화가 나신일이 있을까? 하면서 제 나름대로 그 상황을 만물을 통한 계시로 제가 받아들인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빨리 받아 적나 궁금해 하더라구요.
저는 어떤 소리가 제 육적인 귀를 들려오는 것이 절대 아니예요. 제 마음속에서 제 영의 심정이 조건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심정의 파장을 제가 받아서 제 육신을 통해서 기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마음속에서 그 어떤 나지막하고 아주 인격적이고 부드러운 남자의 음색을 가진 목소리가 말씀을 하세요. 그럼 제가 계속 기록을 하는거예요. 한 시간 정도 하면 그 글들이 만들어 지겠죠.
어느 때는 한 시간 이상이 되면 제가 지쳐서 ‘예수님, 그만했으면 좋겠다’ 고 하기도 하는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어떤 때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쭉 말씀을 하시고, 어떤 때는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성령집회 때는 성령님에 대해서 궁금했던 부분을 기도했을 때 그때 메시지를 받은 거예요.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받을 때 또 자연을 통해서 받은 거예요.
기질이라는 시는 제가 잠을 자는데 비몽사몽간에 누군가가 저한테 계속 얘기를 하는거예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밤1시 반경이었는데,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서 세수하고 올라가서 2시경에 그때부터 계속 음성이 들리더라구요. 50분 가까이를 제가 기록을 한 거거든요. 예수님께서 주고 싶을 때는 잠을 자려고 하는데도 육신은 피곤해도 계속해서 영을 깨우는 것 같더라구요.
‘기질’이라는 제목은 내용을 보면서 제가 정한거예요.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기질’ 이 시를 받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내용을 보면서 아 이것은 기질에 관한 시구나.
비와 바람이라는 제목을 그러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제목을 정하는 거거든요. ‘이 때’ 라는 시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께서 메시지를 전달하실 때 주제를 분명히 정해서 그 주제에 맞게끔 하나의 글에 기승전결이 있어요. 시간적인 추이도 있구요. 어떤 때는 편지글처럼 주세요. 어떤 때는 대중들한테 주시는 메시지 차원으로 주시구요.
‘이 때’ 라는 글을 읽다보면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을 거에요. ‘기질’이라는 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신부의 단장이 어떤 것인가 거기에 맞춰서 그 이야기가 계속 전개 되는것이구요.
지난번에 주셨던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글은 섭리사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회개를 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듣긴 했었지만, 구체적으로 잘 몰랐었잖아요.
우리의 입장에서의 회개가 아니라, 예수님 입장에서 이렇게 이렇게 회개할 때 예수님의 심정에 맞는 회개가 된다고 주시는 답안지 같은 말씀인거죠..
또 제가 오전에 글을 많이 받는것에 대해서 궁금해하더라구요.
오전에 글을 받게 되는 것은 제 딸이 8시경에 어린이집을 나가요.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 중에 받을수도 있지만, 오전에 신랑이랑 딸아이가 나가고 나면 집안이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해요.
그때 예수님한테 기도를 하거나 글을 읽으면서 사색을 하거나 명상을 할 때, 그 때 저한테 글이 전달이 되요. 기도를 열심히 해서 새벽기도 가운데 말씀을 받나 하지만 주로 저는 새벽시간보다는 오전에 저 혼자 있을 때 그때 예수님께서 저랑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그때 심정의 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궁금해 하셨던 점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와 바람』
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전해지는 내 깊은 사연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천지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너희 하나님. 나의 아버지를 너희들은
이 모든 자연의 오고 가는 조화 속에 진정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해가 없이 그 존재가 단 한순간이라도 갈 수 없듯이
너희가 달이 없이 그 캄캄한 밤길을 한 걸음이라도 갈 수 없듯이
너희는 내가 아니고는 이 긴 역사 속에 바른 인생길을 갈 수 없었다.
바람이 되어 전해지는 내 스산한 마음을
너희들을 사랑하여 외면당하고 슬퍼하는 내 쓰린 속내를 알아 주어라.
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이제는 내 눈물소리로 들어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고
내 아버지의 너희들로 인한 그 분내함을 깨닫고 긴장하여라 .
따뜻한 햇볕이 비춰들 때
너희는 내 어머니의 온화하고 조화로운 성품을 느껴라.
진정 너희들은 많은 것들로 나를 느끼고 살아야 한다.
그 모든 사연 깊은 것들을 다 내가 말해 줄 수 없으니
이 세상의 조화 만물로 내가 말하고 계시하는 것이다.
번갯불 치고 천둥이 울 때 너희들은 섬짓하였을 것이다.
폭풍우 몰아치고 대지가 진동할 때
너희들은 그제서야 내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 석자를 떠올리는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나.
언제나 그를 끌어안고 살고 살아야 될 인생들이
만물이 꿈쩍할 때만 그 귀한 이름을 부르고 찾는구나.
이제 너희 나의 신부들은 제발 그리 얄미운 짓은 하지 말아라.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갸웃거리지 말아라.
내 아버지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마음에 철판을 깔지 말아라.
내 아버지가 내 어머니가 또한 내가 창조한 이 모든 만물을
즐겨 돌아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여라.
내가 오늘 움찔하면 너희들은 모두 초죽음이다.
나의 마음이 요동하지 않도록 내게 제발 좀 다정하게 굴어라.
쌀쌀맞게 굴면 나도 너희들에게 쌀쌀해지고 서늘해진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려서 내 슬픔을 대신 말해주는구나.
이 비는 내 눈물이다.
이 비는 내 아픔이다.
이 비는 내 사랑의 징표이다.
이제 알았느냐. 제발 알아들었느냐.
알았다면 내 걸음을 잡지 말고 제발 막지 말고
먼저 앞서 너희들이 앞장서라.
내가 뒤따르며 너희들을 보리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가는 길에 꽃가루 뿌리며
나의 길을 예비하는지 내 뒤따라가며 보리라.
나의 말이 얼마나 섬세하고 부드럽고 이치에 맞는지
너희들은 아직도 잘 모르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들만이 내 말이 진정 진리임을 알고 간다.
사랑의 호소임을 알고 간다.
값없이 주는 구원의 메시지임을 알고 간다.
나는 진정 너희들이
나의 길을 얼마나 예비하며 가는지
뒤따르며 지켜볼 것이다.
어서가자.
우리가 만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
지금은 내 뒤따르며 찔벅 거리지만
그때는 내가 너희들을 안고 갈 것이야.
나의 준비 한 그 나라에 내가 너희들을 꼭 껴안고 갈 것이다.
내 품에 너희들이 안겨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반겨하며 참예하는 그 날을 어서 보자고
내가 여기서 너희 뒤에서 지켜보고 가고 있다.
믿어라. 내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그리고 깨달으라.
단장 된 신부가 되어야 나와 만날 수 있다. 나를 만날 자가 누구냐.
만날만한 이때에 어서 서둘러라. 지금이 기회다.
이 기회를 잡아라.
내 손을 놓은 자가 누구냐.
내 말을 업수히 여기며 조롱하는 자가 누구냐.
만물이 소리치는 이때에
너희들 굳어있는 마음들이 내게 더 놀라울 뿐이다.
사랑하는 내 신부여. 내게 나오라.
나와 함께 하자. 나와 사랑하자.
너희들을 사랑으로 부르노라.
나 예수가.
다음에는 ‘기질’에 대한 시를 읽어 드릴텐데..
아까는 [비와 바람] 으로 시적인 분위기가 많이 나는 글이었다면 이 글은 시적인 편이지만, 편지글에 가까워요.
예수님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주는 하나의 사랑의 글 ‘연서’ 라고 정의를 내려봤어요.
‘우리가 각자 어느 정도 회개를 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단장을 해야 하나? 글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구나’ 이 내용을 받으면서 생각을 했어요.
실상 저에게 주는 글 같지만 저에게 주시는 이 말씀들은 저 하나만을 향해 주는 글이 절대 아닙니다. 섭리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심정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라고 믿고 있거든요. 저에게 주신 이 글을 계속 또 읽고 또 읽다보면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신가 분명히 깨달아지고 감동이 오고 또 어떤걸 회개해야 할지, 어떤 것을 단장해야 할지 또 어떤 마음으로 전도를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깨달아지리라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읽어야 되나. 이 글을 제가 쭈욱 읽어주기도 하지만, 성령에 대한 글이 설명이 들어간 이유는 어떻게 읽었을 때 감동이 오는가 그런 어떤 지침을 알려드리려고 제가 장황하게 늘어놨었는데, ‘이 때’라는 글을 보면 하나의 글 안에 ‘선생’이라는 표현이 있고, ‘스승’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제가 스승으로 할까 선생으로 일관을 시킬까 어떻게 만들까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싫어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예수님 입장에서는 ‘선생’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의 ‘너희들의 스승’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존칭을 써야 되기 때문에 ‘스승’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예수님의 입장과 우리들의 입장을 상황에 따라서 선생과 스승으로 표현을 하셨어요.
또 어떤 때는 ‘선배’라는 표현이 나오고, ‘선조’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거든요.
이것도 선배로 묶을까 선조로 묶을까 고민을 했더니 그것도 싫어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선배’라는 차원은 전체적인 입장인 것 같아요. 초창기 기독교인부터 지금 우리 전에 있는 전체를 망라하는 표현이라면. ‘선조’라 함은 좀 더 초창기 기독교인들.
똑같은 흐름인 것 같지만 언어의 포괄하는 의미가 다 다르더라구요. 그것을 염두 해 두고 읽으시면 이 내용이 맛이 느껴지고 예수님의 심정을 느낄 수가 있어요.
오늘 제가 읽어드릴 ‘기질’이라는 내용도 그 전에는 ‘~했구나.’ ‘오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라는 감탄사적인 부분이 많았어요.
지금은 거의 강권적인 “뭐뭐 해라.” “뭐뭐 해.” “안돼.” 이런 표현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이것은 실상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너무나 사랑해서 “너는 안돼. 너는 내 여자야. 너는 내 곁에만 있어야 돼.” 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저에게 주신 이 글은 분명히 애인들에 대한 심정이예요. 사랑하는 신부에 대한 심정. 예수님이 재림할 때 어떠한 신부로 단장했을 때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가겠다. 그럼 그것은 자녀급이 아니거든요. 애인의 심정이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사랑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그러한 심정의 고백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글을 받아들여야지 더 큰 감동을 받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스케일은 우리가 상상하는 스케일보다 엄청 넓어요.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요 몇 십년의 쫄딱 거리고 살던 인생일 수 있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은 몇 천년. 더 나아가서 우주를 만드신 몇 십억 몇 백억년. 이런 차원의 스케일로 우리를 바라보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육적인 차원으로만 예수님을 느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메시지는 영적인 차원으로 단순히 지구촌을 넘어 우주를 넘어서 영적인 세계까지 포함하는 스케일로 저희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느낄 때 내 입장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섭리를 들여다 봐야 되요. 그래야지 예수님의 어마어마한 심정의 세계를 그 방향에 대해서 정확히 꿰뚫고 기도할 수가 있어요.
저에게 주시는 이 메시지를 통해서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아까 제가 얘기했듯이 기도 할 때도 우리는 우리가 정말 열심히 예수님을 그동안 사랑해 왔는데, 예수님은 이정도면 우리 신부 삼아주지 않나?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 많으실 거에요.
제가 처음에 이 메시지를 듣고서 2월 20일 날 ‘하늘에서 난 자만이 메시아가 되고 구원주가 될 수 있다’ 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저는 예수님의 구세주적인 사명을 내가 온전히 깨닫고 예수님의 그 위대하심과 어마 어마한 구원의 사건을 제가 온전히 깨닫지 못한 것을 상당히 기도를 많이 했어요. 저의 회개기도는 그것이었어요. 내가 온전히 예수님을 나의 메시아로 고백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당연히 “저 신부 삼아 주실거죠?”가 아니라 “예수님, 저는 정말 죄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신부가 정말 되고 싶어요. 신부로 허락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어요.
그냥 내가 준비하고 있으니까 신부가 될 사람을 찾으러 왔으니까 당연히 나를 신부 삼아주시겠지 이게 아니었어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싶은데,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허락해 주세요.” 저는 그것을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 했구요. 예수님 앞에는 제가 정말 낮아지는 땅바닥에 엎드러지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기도를 했어요.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 흡족해하면서 저의 기도를 받으시는 것 같더라구요. 목이 곧다거나 교만하다거나 나 열심히 예수님 믿었는데, 왜 그런 표현을 쓰시지? 그건 정말 우리 생각이예요.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입니다. 예수님한테 더 낮아지고, 낮아지고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거예요. 어떤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통해서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것은 저희들은 선생님과 예수님, 하나님께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한 목이 곧음을 꺽어 달라고 내 무릎을 꺽어 달라고 마음을 내 마음을 비워달라고, 오로지 예수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낮아진 자의 마음으로 아니, 낮아진 자세로 날마다 예수님께 엎드려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그런 순종적인 모습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기도, 그러한 자세를 가졌을때 그럼 분명 예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기쁘게 받아 들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처음 이 시를 받게 된 게 아까 얘기했듯이, 1시 반경에 잠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으셔서 내려가서 세수하고 올라와서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순회사 사명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저는 순회 목사였으면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타이틀없이 오로지 순회사. 너무나 자유롭고 의식하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이 사명을 뛸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어떻게 저에게 순회사 사명을 주실 수 있었는지 기도를 드렸더니.
‘너는 내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참 좋구나. 나는 네가 참 어여쁘구나. 나는 네가 좋구나. 나는 네가 어여쁘구나. 나는 네 기질이 좋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저의 모든 부분의 기질이 다 좋다고 하신 것은 아니겠죠. 그러나 저의 담대함. 강인함. 저는 섭리 오면서 한번도 이 역사가 하늘의 중심역사라는 것을 의심해 본적이 없습니다. 정말 이 역사는 제가 기다렸던 역사였고, 말씀을 들었을 때도 예수님을 통한 역사라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서도 날마다 확인했고, 날마다 검증하고 날마다 믿고 깨달아 왔습니다. 그래서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비록 앞에 나서서 뛰지는 못했지만 제 마음에서 한번 확신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밀고 가기 때문에 제 마음이 섭리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거든요. 물론 겉으로 딱딱해 보이고, 차가워 보일수도 있는데, 제 마음속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겉보기에는 차가워보여도.. 그러한 마음을 예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너무 고맙더라구요. 저의 숨은 속 기질, 속 마음을 알아주신게 저는 너무나 감사했고. 그래서 이러한 글들이 저에게 주어진 것 같아요.
여러분 각자는 이 글을 본인에게 주는 각자에게 주는 예수님의 사랑의 호소라고 듣고 들으시길 바래요. 그래야 본인에게 감동이 옵니다.
『기질』
나는 내 사랑하는 여인들이 담대하길 원하노라.
그들이 나를 대신해 나의 생명들을 살려야 되기에 담대해야 할 것이다.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 때로는 겸손하되 영민해야 할 것이다.
마냥 부드러워서는 이 길을 갈수 없어.
담대하며 강하며 온유하며 겸손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러우며 냉철하며 정확하며 끝없이 순종적이며 자기를 낮출 줄 알며 남을 배려하며 나의 슬픔을 누구보다 알아주며 내 눈물을 닦아주며 나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내게 그 사랑을 고백하며 진정코 자신을 나에게 두는 자여야 한다.
내 사랑하는 여인은 겉도 속도 모두 성결하며 나를 우선하며 나의 사랑을 갈망하며 진정 나를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찾으며 깊이 사모하는 자여야 한다.
내 마음을 얻고 싶으면 너희들은 내가 원하는 내 여인의 기질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내 여인의 기질을 배워야 한다.
내 사랑은 모순이 없어야 하며 깊이가 있어야 하며 순수해야 하며 거짓이 없어야 하며 진정 긍휼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며 상대를 무시하지 않으며 상대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상대를 끌어안고 가는 그런 사랑이어야 한다.
어느 누가 내 마음에 합당하게 나의 사랑을 갖추고 또 갖추어서 내 마음을 가질 것이냐. 네냐 너냐 너희냐. 모두 다 내 앞에 이러한 기질로 거듭나야 한다.
절대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돼. 내 사랑을 줄 수 없다. 절대 나 외에 다른 누구를 쳐다보아서도 안돼. 나는 질투의 신이라 하지 않았느냐.
나는 내 사랑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의 이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지 않지.
내 사랑이 그리도 크기 때문이야. 내 사랑이 끝없이 넓기 때문이야. 내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이지.
내가 찾는 그 기질을 가진 여인은 이 섭리에 많고도 많은 것 같지만 어찌하여 내 눈에 띄는 자가 별로 없느냐.
담대하나 부드럽지 않고 너무 강하여 내 양들이 두려워하는 자. 그래서는 안 되지.
온유하나 그 중심이 약하여 양들을 모으지 못하는 자. 그래서는 안 되지.
중심을 가지고 단단하며 깨지지 않으며 사랑스럽고도 부드럽고 온유하며 정확해야 내 양들을 잘 이끌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이야.
너희들은 진정 나의 여인이 되고 싶다면 내가 말한 그 많은 색깔을 지녀야 돼.
한 가지로는 내 마음에 들 수 없어.
정녕 나 예수는 너희들을 내 신부로 삼기로 했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나 혼자서 갈지라도 진정 내가 원하는 그 기질의 여인이 나타날 때까지 외롭지만 혼자 갈 지라도 나는 정녕 내 여인이 갖추기를 지켜 볼거야. 또 지켜보고 또 바라보고 또 건드려보고 어찌하고 있나 또 살펴보고 드디어 그 여인이 꿈찔하면 그때는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해 주어야지.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그 자격조건을 가진 자로 만들어서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
준비된 만큼 부족한 만큼 내가 데리고 살지는 않을 거야.
갖추어야 나의 신부로 삼을 거야.
나는 그 입이 거친 자를 싫어하며 그 속이 겉과 다른 자를 싫어하며 그 마음에 다른 생각을 품은 자를 싫어하며 오직 단단하고 상냥하며 굳세고 부드러우며 나에 대한 열망과 사랑으로 가득한 자를 좋아해요.
이제 알았다면 그 기질을 갖추고 나의 사랑에 도전하여라.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랑을 너희들이 진정 알았다면 그 기질을 가지고 내 마음을 흔들어 보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나의 끝없는 사랑을 퍼부어 줄 거야.
나 신랑으로 온 예수가 내 신부에게 이 끝없는 사랑과 자비로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 인생을 값지게 만들어 줄 것이야. 그 삶이 탄탄대로가 되고 그 마음이 외롭지 않게 언제나 나의 사랑과 기쁨으로 그를 품어줄 것이야.
너희들은 어찌 내 사랑을 그리 몰라주어서 내 마음에 눈물 콧물 피멍까지 들게 하였느냐. 이제는 내 마음을 좀 훔쳐다오. 내 눈물을 너희들에게 지금까지만 보일거야.
내 사랑하는 여인이 나를 알아주고 나를 끌어안고 내 사랑에 희락하고 살게 할 거야.
영원한 그 기쁨에 초대하여 그 마음에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게 할 거야.
이래도 너희들이 주저하고 머뭇거린다면 아예 내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지.
나를 알아주고 내 사랑을 알아주고,
내 아픔을 같이 나눌 줄 아는 그 여인 하나만 보고 살 거야.
어서 너희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다른 길로 가버릴지 몰라.
내 마음을 내 사랑을 더 이상 구걸하게 하지 말아야 돼.
나는 그동안 너무 괴롭고 쓰라린 내 사랑의 외면으로 지칠 대로 지치고 외로울 대로 외로웠기에 너희들만큼은 나를 돌아서게 하면 안 되지.
나를 붙잡아야지. 나를 신랑삼아야지.
그래야 내 사랑으로 기뻐하고 그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사랑에 목매이고 있는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내 사랑이 바다와 같고 내 자비가 저 우주와 같고 내 긍휼이 이 세상에 차고 또 넘치기 때문에 그저 한없이 너희들의 사랑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야.
어서 내 앞에 신부가 되었다고 단장을 하였다고 정녕 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너희 스승이 고백하듯 나의 여인이 고백하듯, 너희들도 고백하고 또 다짐하여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영원히 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그리해야 너희들을 내가 끌어안고 가지 않겠어? 이건 상식 중에 상식이지.
나의 사랑이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나를 잡아주고 얼러주고 쓰다듬고 끌어 안아보아.
내 가슴의 열기가 네게로 전해지고 그 심장이 멎을 정도로 나를 끌어안고 가야 너의 인생이 더욱 멋지고 보람 있고 희망 있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지.
이제 모두 알았다면 이제 모두 깨달았다면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 기질로 어서 단장하고 준비하여라. 내 나라를 너희에게 주고 싶은데, 내 마음에 우선 들어야지.
그래야 그 나라에서 우리가 서로 마음을 맞추고 살수 있을 테니까.
내 사랑을 얻은 자. 그는 복된 자로다. 나의 영원한 그 나라에서 내가 그를 신부로 두고 기뻐하며 희락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어찌 그리 욕심이 없느냐.
엉뚱한 데다 그 모든 사랑과 열정을 쏟고 있구나. 진정 값어치 없는 그 황량한 세상 것에만 그 모든 정성과 쓸모없는 시간들을 쏟아 붓고 있구나. 이렇게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는 저 소경과 같은 무지자가 있어 나를 더 놀래키는구나.
이렇게 내가 나의 사랑을 보여주고 말하여도 나에 대한 욕심이 없이 그저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구나. 그저 그저 자기 그릇대로 쫄딱 거리며 저리도 희희낙락 진짜 신랑이 누군지도 모른 체 괜한 짓만 모여서 하고 있구나.
내가 이미 말한 바 그 기질을 갖추고 어서 빨리 나를 신랑 삼아라.
그것이 너희에게 복 되고 쓸모 있는 행함이 될 것이야.
네 운명이 좌우되고 네 인생이 좌우되고 네 영원한 그 세계가 좌우되는데 너는 어찌 어서 빨리 나에게 그 심정을 맞추지 않고 있는 너는 어찌 그 무지로 담대한 것이냐.
나는 이제 더 이상 긴말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이제 더 이상 눈을 꿈뻑이지도 않고 나를 이미 발견하고 사는 사랑하는 나의 여인과 내 기쁨과 내 사랑과 나의 즐거움을 너 보란 듯이 누리고 있을 거야.
네 아쉬우면 어서 빨리 나를 붙들고 또 붙들어야지.
그저 나만을 신랑삼고 살아야지.
겉보기는 고생스러워도 그 속은 천국이 따로 없지.
그 나라가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서 내 품에 안겨서 내가 준비한 그 나라를 기다리며 이 세상살 때 이미 그는 천국인이 되어 사는 것이지.
이 깊은 비밀을 너희들은 참으로 속마음이 둔하고 게을러서 이리 찔벅 거려도 알지 못하는 그것이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아! 이제 고만하련다. 이 이상 더 많은 말이 무엇이 필요할 것이냐.
나는 이미 말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하는 자의 기질에 대해 제시하고 자세히도 일러주었으니 이제 나는 기다리고 있을거야.
누가 빨리 그 기질을 갖추고 나를 신랑 삼으러 달려오는지 여기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지켜보아야지.
너희 선생 옆에서 그와 같이 나를 신랑 삼으러 내게로 달려오는 자들이 또 누가 있나하고 내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 밤이 너무 깊어서 나는 더 이상 눈도 감고 말도 줄이고, 귀도 닫고 가만히 있어야지. 어서 내 마음 닫히기 전에 빨리 돌아와야 할 것이야.
부지런한 내 천사들이 나팔을 준비하고 있잖아? 새벽이 오면 더 이상 내 여인들을 부르지 않고 찾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
이미 내 사랑을 알고 내 심정에 맞는 이 여인들을 데리고 나는 준비된 그 나라로 올라 갈거야. 내 나팔을 든 천사들이 눈짓하며 재촉하는 이때에 빨리 내게로 돌이키고 돌이켜 나를 잡을 자가 네냐 너냐 누구냐.
나 예수가 이리도 길게 마음을 보여주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재촉하고 재촉할 때 어서 단장하여라.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라.
내 앞에 신부의 단장을 어서 하고 나를 붙잡으라.
나는 너희의 신랑이 되고, 너는 나의 어여쁜 신부가 되어 나의 그 나라에서 영원한 그 사랑 안에 함께 거하게 되리라.
이만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깨어있는 자들은 모두 알아들었을 것이다.
나의 여인을 통해 주는 나의 이 말을 네 마음팍에 새기고 읽고 또 읽어라.
내 눈에 띌 때까지 또 읽고 깊이 생각해보고 실천자가 되어라.
내 눈에 띄어서 내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내가 너를 신부삼고 나는 신랑이 되어 영원한 그 나라를 네게 줄 것이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