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진정 자유로운가?

2010-02-23 10: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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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부터의 도피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릭프롬이 쓴 책인데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유는 소극적(~로부터의 자유), 적극적 자유(~를 향한 자유)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극적 자유를 쟁취하고 나중에는 그 자유에서 도리어 고립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함을 얻지 못해 소극적 자유로부터 다시 도피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권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즘이 왜 생겨날 수 있었는지 심리학적으로 풀어나갑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래에 나와 있는데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거예요. 그런데 이 내용만 보면 솔직히 전초하는데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힐 수도 있을 거예요.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해 가면 좋겠죠? 저희가 보통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소극적 자유를 얻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라는 생각에 세뇌되어 왔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고 그것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한 것이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고 성적과 성공은 비례한다는 의식이 무의식가운데 형성되어 있었기에 공부만을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학만 가면 모든 힘겨움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주체적인 판단과 목표와 비전이 없이 사회가 관습적으로 정해 놓은 가치에 보조를 맞추어 갔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소극적 자유를 얻기 했지만 사람들은 대학이라는 또 다른 체재 속에 얽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선택한 과가 이전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잇닿지 않고 취업이 잘 되는 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 그런 과에 점수가 미치지 못하면 대충 자신의 점수에 맞추어 과를 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 생활에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이진학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 목표 위에 자아 실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에 목표를 또 다시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무나 무한히 주어진 자유를 처음에는 마음껏 쓰지만 그것은 순간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소비할 하나의 대상만을 찾은 것 뿐이고 또 다시 고립감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의 과가 좋던 싫던 어느 순간 부터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열심히 토익도 공부하고 각종 시험 준비를 하고 학점도 잘 따려고 노력을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고 바라는 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돈을 잘 벌 수 있는 곳, 근무여건과 복지가 좋은 곳을 가려고 노력합니다. 진정한 자유 즉 ~향한 자유가 아닌 당장의 생존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유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고생을 해서 대학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보람과 긍지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학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직장이라는 조직과 체재 가운데서 다시 고립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이 부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생각하시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욕구 5단계설”로 유명합니다.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가 있는데 하위욕구가 충족되면 상위욕구로 점차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1단계는 생리적 욕구로 의식주 생활에 관한 욕구 즉 본능적인 욕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최하위단계의 욕구이죠. 2단계는 안전의 욕구로 사람들은 신체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안전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3단계는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로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주위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예요. 4단계는 존경의 욕구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로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하위욕구가 충족되야지 그 다음 상위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에는 많은 반론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선뜻 이해가 안 가시는 부분이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5단계의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자아실현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틀리고 종교의 세계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도 목표가 틀릴 수 있겠죠. 먼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한다 할지라도 자아실현을 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드뭅니다. 보통 사는 대로 생각하지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생각을 한다고 하면 내가 이 직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 좀 더 편하고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장은 없을까? 모은 돈을 어떻게 재테크해서 결혼자금을 마련할까? 등 정서적으로 안전의 욕구를 충족하려 합니다.


 진정 자아실현을 위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결여되어 있었기에 결국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밑거름, 재료를 이미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적극적 자유는 곧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인데 그것이 직장 생활에서 이루어질 수 가 없게 되죠. 직장 생활이 힘들고 만족스럽지 않고 내가 알던 것과 다른 현실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도 제가 앞서 제시한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곁들어 설명해 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과연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결혼을 해서 내가 무엇을 이루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의식보다 관례적으로 거의 누구나 결혼을 하니까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세태가 좀 바뀌어서 솔로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제도권안에서 결혼을 선택하게 되죠.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에 또 다시 얽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 한 사랑을 이루고자 결혼했던 사람들도 사랑의 허상을 깨닫게 되고 권태감에 시달리게 되죠. 아이들을 가지게 되면 가정을 더욱 보살피는데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자녀들이 크면 클수록 양육에 대한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지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사랑과 행복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겠다 혹은 자녀를 훌륭한 인격체와 능력자로 키워보겠다 등 가정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결혼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단지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까 그리고 가정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때가 되면 결혼을 하게 되니까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내가 사랑하던 사람을 평생토록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의해 결혼을 했지만 그 사랑도 조금씩 분노와 슬픔, 외로움 등을 동반하게 됩니다. 자녀까지 생기게 되면 그야말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가운데 또 다시 갇히게 되죠.


 이처럼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가정 등 우리가 존재하는 기본적인 조직 내에서 단 한 번도 적극적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인생이 아니냐는 자조어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적극적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유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알면서도 제대로 못 사는 경우보다 몰라서 못 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그 자유를 어떻게 얻는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겠죠?


 먼저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지금까지 어떠한 생각과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왔고 그 생각의 기저는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러한 가치들을 주입시켜 왔는지 외부에서 왔는지 내부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해 질 때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표가 좀 더 명확해 질 수 있고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성경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인식관들을 바로 잡아주고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을 세세히 알려 주어서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없애주어야 합니다.

 제가 이전에 올렸던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대충 어떤 흐름인지는 감을 다 잡으셨을 것이라 생각이 되네요. 아래 내용은 에릭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책 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을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고요. 잘 활용해 보세여*^^* 


▶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유태계 독일인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n, 1900∼1980)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쓴 책으로, 1941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특히 나치즘이 대두하게 된 원인을 사회 심리학(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의식이나 행동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로부터의 자유, free from)와 적극적 자유(∼을 향한 자유, free to), 두 종류로 나누었다. 소극적 자유는 어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찍이 중세 이후 서구 사회에서 개인이 획득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이런 소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은 소극적 자유를 얻음으로써 고독과 무력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적극적 자유를 획득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의미의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적극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자유로, 개인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유대 관계를 찾아낼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적극적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곧 참된 자아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 근대로 들어오면서 인간은 자연의 속박, 정치적ㆍ종교적ㆍ경제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소극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개인에게 고독과 불안의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인간이 왜 고독을 두려워하는가’에 대해 프롬은 ‘인간은 본래 남과 협력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 이며, 또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데 있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모든 경제 활동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자본가건 노동자건 간에 인간은 모두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현대에 와서 인간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 ‘기계적’ 또는 ‘소외적’ 관계가 되면서 사람들은 한층 더한 고독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무서운 고독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로지 모든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하나로 뭉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새로운 유대감을 키워 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강한 힘에 종속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려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독과 무력감에 떠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길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경우, 즉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에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고독과 무력감의 상태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 한다.


 이와 같은 도피는 대체로 권위주의적 성격(지배-복종의 관계를 맺으려는 성격)과 자동 기계화의 측면으로 나타난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경우, 독일인들이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즘에 복종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우 1차적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이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2차적 속박을 구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권위에 복종하여 그 희생이 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 즉 유태인들을 멸시하고 학대하며 욕구 불만과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심리가 여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동 기계화의 상태로 나아갈 경우는 자아를 상실한 개인이 그 상실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의 기대에 따라 자동 인형(주체적 판단 없이 유행이나 광고에 따라 수동적으로 소비 생활을 하는 대중들의 삶을 비유한 말이다.)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행동함으로써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거기서 안정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안정감을 잃지 않으려 더욱더 남의 기대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독일 나치즘은 물론이고, 미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투표를 할 때만 주권을 가진 존재로 대접받고, 선거가 끝나면 자신이 뽑은 그 권위 체제에 복종해서 살아가는 민주주의 체제 역시 자동 인형화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프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 자유를 실현할 방법도 제시하였다.    즉 인간이 자발적으로 사회 과정에 참여하여 개인의 자유화 개성화가 억압받지 않는 완전한 민주 사회를 이룰 경우, 적극적 자유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먼저 사회 기구와 제도의 개혁을 통해 사회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에리히 프롬의 책-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따르면 자유는 ‘~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 소극적 자유와 ‘~를 향한 자유’를 뜻하는 적극적인 자유라는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소극적 자유는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상태’이고, 적극적 자유는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의 내부적인 주체성과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이 다수에게 분산 되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종교혁명, 르네상스, 시민혁명, 계몽사상 등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억누르는 외부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의 성과도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러한 자유는 소극적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극적 자유를 얻은 인간은 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점차 분리된 개인으로서 인간적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소극적 자유의 대가로 기존의 인간적 연대성에 의한 근원적 결연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고독하게 된 인간은 그 고독의 탈출구로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즉, 소극적 자유의 성취 이후 생긴 개인적 고립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극적 자유를 찾기 보다는 자유로부터 도피를 선택하여 권위에 대한 복종하여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자기만족적인 낙관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에서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히틀러의 능력도 물론 큰 작용을 하였겠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인간의 심리가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패 이후의 독일- 폐허가 된 나라에서 심리적 고립에 빠진 독일 국민들은 적극적 자유에서 도피하여 새롭게 생긴 히틀러의 권위를 선택하여 전체주의를 탄생시킨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싸워 이기려 하기 보다 복종하여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이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욕구……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나는 과연 자유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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