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기성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유용한 자료

2009-05-20 15: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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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뽕짝'스타일의 성가

 부흥회나 성령대망회가 열리는 기도원및 중, 대형 교회 주변에는 성도들에게 각종 성가 음반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노점상들의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뽕짝'스타일의 노래들도 많이 있다. 어떤 성도가, 기존의 복음성가와 찬송가의 멜로디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던 것을 나는 들은 일이 있다. 거룩한 찬양들을 그런 천박한 흘러간 가요 스타일로 불러서 되겠냐는 의견이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내가 듣기로는, 어떤 성도중에는 '뽕짝'스타일의 성가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성도는, 일반 가요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된 가수를 통해 흘러나오는 성가를 듣고 심정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찬송의 도구인 음악의 스타일 자체에 거룩한 스타일이 따로 있고, 천박하고 거룩하지 못한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도대체 누가 세운 기준을 공식화해야 말썽의 소지가 없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한 성도에게 거룩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스타일의 노래가,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볼 때, 찬송의 외적 스타일만 가지고 거룩성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찬송의 외적 스타일(선율, 리듬, 창법, 연주형태) 자체는 선악을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선악의 판단의 대상은 도구가 아니고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식칼이, 그 날 밤 그 집을 침입한 강도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흉악한 도구로 돌변하는 것이다.


 칼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칼을 누가 무슨 용도로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음악을 찬송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실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타락의 도구로 음악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우상을 섬기는 도구로 음악이 사용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행위자체를 가증히 여기실 것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놋이라는 땅에 에녹이라는 성을 쌓고 살았던 기사가 나오는데, 가인의 후예 유발에게서 악기(수금, 퉁소)가 유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를 떠난 가인의 족속들이 정체감을 잃고, 악기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개발하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허함만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악기가 가인의 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근거로 악기는 모두 악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다윗의 수금의 연주가 바로 그것이다. 다윗이 가인의 문화에서 유래한 수금으로 연주를 했을 때 사울에게 임했던 악신이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고 악신을 쫓으신 것이다. 이 때 다윗이 드린 찬송은 영적인 찬송이다. 악기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금, 은 패물들을 취하여 나왔다(출 3:2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을 짓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치장하는 귀걸이, 가락지, 목걸이들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출 35:20-29).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셔서 성막이 건축되도록 하셨다. 육체를 위해 사용되어졌던 장신구들이 거룩한 성전으로 열매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자.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세계 곳곳에서는 나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다른 스타일(문화)을 매개체로하여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구제하고 계심에 틀림없다.

 

 출처 : 프라비 월드 "찬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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