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 악한 사람이 손을 못 대게 하지, 왜 악한 사람이 손을 대게 하실까? 2

2009-05-04 20: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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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받는 것 같아도 악인들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놈들, 강자들이 약자들 가져다 놓고 다 뺏어다가 잘 먹고 잘 지내는데, 왜 하나님은 놔두시나?’합니다. 어느 때 보면 그들이 죽을 때까지도 그러다가 죽습니다. ‘야, 어떻게 저렇게 놔두시나?’합니다. 성경에 이 문제에 대해서 선지자들의 많이 건의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보라. 끝까지 보아라. 갈 때 보던 나무가 올 때 없어졌느니라.” 누군가 베어 갔습니다. 사람을 두고 얘기했습니다. “갈 때 봤는데 올 때 보니까 없어졌다.” 나도 그런 것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하던 사람이 죽고, 멸망 받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그 기간이 있습니다. 그 형벌 받는 기간에 형벌 받고, 또 마지막 심판 때 심판 받고, 그렇게 해서 멸망을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다. 지금은 악인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 고통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의인들이 거기서 몸부림치고 힘들고 그 역겨운 고통을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의인은 연단을 받고, 의인들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단련을 받는 기간이다.” 세밀하게 살펴야지, 그냥 봐야지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왕들과 군대들과 법관들과 백성들을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꼭 행위대로 심판을 하시는데, 금방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판을 했으면 사람이 심판 받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해를 끼친 강도나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놔두시는가?’ 그러는데 나중까지 못 봤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 것을 모릅니다. 나중에 가서 알아보고는 ‘그 사람이 감옥 가서 지금 갇혀있구나. 하나님이 행하셨구나.’ 그것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나, 나아가서는 악한 자들이 겪는 것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못 봤다는 것입니다. 겪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겪고 사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겨우 걱정만 합니다. 당한 것을 가지고서 “너무 서운하다. 섭섭하다. 마음 아프다. 억울하다.”합니다. 의인들에게 가보면 그렇게만 하고 있고, 악인들은 두려움과 고통과 멸망으로 거의 돌아서 살고 있습니다. 거의 미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사형 선고 날이 있듯이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그 날 하나님이 끌어다가 무저갱으로 보내고, 흑암에 보내서 처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흑암으로, 멸망으로, 지옥으로 심판을 했어도 육신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이 그렇게 고생하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그대로 그냥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도를 내리고,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주었는데도 의인들은 당하고 ‘왜 저 사람은 심판하지 않고 놔두지?’합니다. 꼭 죽이고, 죽여 버리는 것만이 심판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1천 분의 1도, 1만 분의 1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라. 불쌍하니까 기도해주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대개 하나님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할 때에 한계를 주었습니다.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할 때 한계를 주었습니다. 그 한계를 어떻게 주시는고 하니, 바닷물이 한계를 넘치지 못하게 하심과 같이 했습니다.(잠8:29) 바닷물이 넘칩니까? 한계 이상을 못 올라옵니다. 그런데 심판할 때는 덮칩니다. 바닷물이 한계를 넘어옵니다. “한계를 넘어오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선생님도 늘 기도할 때 보면, 악인들이 쫓아다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지금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신경 쓰게 됩니다.” 그날 기도를 할 때에 바닷물이 나 있는 곳으로 좍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저쪽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올라오다 끝나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의 한계를 정해놨으니 걱정 말아라. 바닷물의 한계를 안 정해놓으면 조수할 때에 육지를 다 덮을 것이 아니냐? 조수할 때 밀물 썰물이 들어올 때 육지를 다 덮지 않겠느냐?” 그러나 한계를 정해놔서 시계추와 같이 더 이상 못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리로 썰물, 저리로 밀물할 때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못 옵니다. 그렇게 한계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한계 상황이 있는 존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악의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넘치지 못하게 했다. 한계이상 못 가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하셨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 2008년 5월 8일(목) 새벽말씀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새벽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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