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

2007-10-19 09:37:49
조회 420 추천 212

 

  선생님의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

 섭리역사가 다른 종교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들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펴시니 새로운 문화와 제도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30개론이라는 새로운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예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 심정, 지식에 대한 인봉이 떼어지고, 새시대 새노래가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째즈, 치어, 모델, 힙합, 사물놀이, 밴드, 연극, 뮤지컬, 밝은 미소... 등 각양 각색의 문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되었죠. 또한 섭리는 유독 여자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어느 종교를 가 보아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단상에 서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잃어버렸던 여성의 역할 즉 사랑과 심정의 대변자로써의 여성적 가치를 부활시키셨습니다. 저희 섭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틀려서 십자가를 교회에 세우지도 않고 십자가 악세사리도 하지 않죠?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성과 틀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기성과 확연히 다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분봉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동일 계열의 교회를 지교회 형식으로 세우고 있지만 선생님의 목회 사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선생님은 한 목사가 교인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관리할 수 있는 적정인원을 100명 이내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분봉의 역사가 일어났었죠?


 어느 종교의 지도자를 보아도 중심이 되는 성전을 크고 위엄 있게 지으려 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선교가 목표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 정성으로 살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도수가 점점 많아질수록 지도자와 신도의 관계는 수직적으로 형성이 되고 최고지도자는 국내 및 해외에서 큰 집회를 열면서 말씀 전하는 일에 주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도들과의 일대일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생명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에 절대 소홀함이 없으십니다. 전 교인들에게 나에게 편지하라고 내가 직접 관리해 주겠다고 하는 종교지도자가 어디있겠습니까? 편지를 써 줄때도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답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고 정성을 들여서 편지를 쓰십니다.


 생명 하나하나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으시는 선생님이시지요. 분봉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도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생명 한 생명에게 하늘의 손길이 더 많이 닿길 바라는 선생님의 간절히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의 최고 지도자이시면서도 저희 회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선생님, 언제 어디서든 친근하고 다정다감하게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선생님, 진실되고 신실한 생명 사랑의 외길을 걸어오신 선생님을 증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전반기 때 찬스였는데. 섭리를 나간 사람에게도 가끔 전화를 해봅니다. 네가 나를 싫어해서 그러느냐? 환경 따라 그랬는데 다시 가까이 전화한다. 그렇지만 나이도 먹어서 옛날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교회 나오라 그러면 자주볼 수 있다. 그 때가 찬스였는데 안 나와, 감정이고 서운한 것이고 다 버려야해. 앞으로 후반기 끝날 무렵에 전화할 지 모르지만 못할 것 같아. 연애도 젊을때하지 늙어서 못해. 눈을 뜨면 확실히 아니까 심령의 눈 감각의 눈 예감의 눈 영계의 눈을 뜨면 그냥 보여.   내가 지금 여러분들 눈을 뜨는 것은 죄를 지적하려고 눈을 뜨는게 아니라 좋은 것이 있는가 하는 거여.


 내가 죄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좋은 것이 있는데 못 대해주나 그것을 신경씁니다. 죄에 대해서는 처리 못하면 사탄이 끌고 갈까봐 그것은 조금 밖에 없어 바로 나는 투시하려고 거기에 대한 눈을 떠서 보려고 해요. 지적해서 혼내서 자신을 깨우치려고 하는 것은 조금밖에 없어. 거진 죄를 지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나에게 얘기는 않고 사탄이 뺏어갈까봐 그것을 내가 알려고 몸부림치죠.


선생님이 1999년도에 왜 21일 금식을 한 줄 압니까. 미국에서 21일 금식을 했는데 왜 한 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따라 다녀야 하는데 내가 양심에 가책이 되면 되겠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로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 섭리사의 모든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그런 기도를 계속 21일 동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너 정말이여? 그들을 용서하면 앞으로 핍박을 또 하는데...”하고 말씀하셨을 때 선생님이“좋습니다. 다 용서 해주십시오. 다 모르고 하는 것이니까 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도 용서해주지 않았습니까. 그 때 잘못했을 때 용서해주지 않았습니까. 왜 나만 용서해줍니까. 다 용서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 용서해줬습니다.


날마다 삼선교에서 누군가 한명이라도 올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같이 기도 제단을 쌓으셨던 선생님이십니다. 강댓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단 뒤에 무릎을 정연히 꿇으시고 늘 눈물섞인 통성으로 기도하셨던 그 모습이 제 기억속에는 잊을 수 없는 현재형으로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당시의 기도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여 오늘도 생명을 보내주시옵소서. 제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가르치겠나이다. 기독교와 이 민족을 돌아 보소서. ”

 한번도 꿇은 무릎을 펴지 않으시고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기도하시던 선생님.

세상은 너무도 깊은 잠에 곤히 잠들어 있고 어떻게 이들을 하나 하나 깨울찌 애태우면서 기도하셨던 선생님이셨지요. 하나님의 애환을 예수님의 비통함을 온 몸에 안고 절규하듯 간절히 하늘에 매달리는 기도를 하시는 선생님의 기도를 짜면 생명에 대한 애절함이 피멍처럼 맺혀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이사야42:3)

생명 하나 하나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시죠.  삯군 목자는 삯을 위해서 일하지만 선생님은 삯을 생명으로 받는 분이시잖아요. 온통 생명살리기에 헌신하시는 뜨거운 눈물로 저희는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감람산 기도원 밑에 새벽 3시에 집결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삼삼 오오 사람들을 짝을 지어 주시면서 이곳 저곳에서 기도를 하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맨 마지막 까지 뒤로 쳐져 있다가 부러 선생님께서 기도하시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실까? 솔직히 기도는 되지 않고 무슨 기도를 하시는지 그 기도소리에 저도 아멘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저는 목이 메어 버렸습니다.

“주여 이들이 부족 하고 어리니 이러 이러하게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할 찌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도 하지 못할찌라도 약해서 그러하니 용서 하여 주소서. 이것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구체적으로 조목 조목, 하나 하나,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하시는 기도는 전부 그러한 기도 였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저희를 위한 중보기도셨습니다. 선생님 자신을 위한 기도는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순간 저는 와락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기도를 먹고 사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 수 있었던 기도의 근원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 정수빛 목사님 간증


그리고 교역자들이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양이 한 마리 없어지면 그것을 별로로 생각합니다. “전도가 4명 됐으니까 채웠다.”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이 없어지면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참고로 봐야 됩니다. 내가 양을 파악해야 됩니다. 양 100마리를 맡겼는데 99마리 있는 교역자들은 교체해야 됩니다. 양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찾지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교역자들이 그래서 많이 교체가 되었습니다. 내가 찾던 양들이 100마리 다 있어야 됩니다. 교회 나오던 사람들이 다 나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보면 찾던 양들이 없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교역자가 그만큼 내 심정과 멀다는 것입니다. 내가 찾던 양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목자가 애가 타게 찾습니다. 찾아서 줬는데 그 다음에도 또 신경을 안 씁니다. 그러면 그 목자는 자격이 없습니다. 목회는 잘하는데 그런 데에 자격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그런 것을 잘하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늘 그러지 않습니까.

 “이성관계만 해야 애인이냐. 심정일체 되었으면 애인이지. 내 뜻대로 같은 사상 갖고 같은 생각 갖고 같이 가면 애인이 아니냐. 그렇게 같이 사는 것도 애인이 아니냐. 이성관계를 갖고 뒹굴고 했어도 다 이혼하고 나자빠지고 서로 울고 짜고 하는 것을 못 봤느냐. 아이들까지 낳아놓고도 그러지 않느냐.”

 나를 안 만나고 만지지도 않았는데도 기쁘고 즐겁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보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다고 그랬지요? 여러분만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여러분들보다 10배, 100배, 1000배 더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근거로 시를 썼습니다. 시집을 보면 거의 다 그리워하는 시입니다. 애인을 그리워하는 시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한 번도 안 봤는데 하루에 20번이고 30번이고 창문을 열어놓고 혹시나 오는가 하고 쳐다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살고 있습니다.

 -- 2005년 8월 28일 주일말씀(무제)

  

선생님이 바라보시는 진정한 사랑이란?

 너의 생명이 생명을 사랑하는 도란 너의 생명이 위험한 가운데 있더라도 내 생명을 잃어가는 가운데 있더라도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사랑이라고 말씀 하셨어요. 주님께서는 그런것,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환란가운데 가르쳐 주신 거예요. - 2007년 7월 7일 정조은 사도님 말씀


이 포스트를.. (+0)

[58.xxx.22.xxx]
댓글 0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