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역사를 보면, 세계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박사나 지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신임을 못 받은 자들도 많았습니다. 후대에 제대로 가르치는 자들로 그 모순을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우주론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을 주장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주기적으로 돈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는 자만 그같이 가르쳤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를 중심하여 여러 학자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 왔어도 2000년 동안이나 이 이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천동설’이라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갈릴레이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니 그제야 믿었습니다. 갈릴레이는 태양을 중심하여 지구가 돌고 주변의 행성들도 돌고 있다고 지동설을 주장하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그 이론은 실제로 맞는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약 2000년 만에 그릇된 사고와 이론이 깨졌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태양이 돌다가 멈추었다.’고 하는 성경 여호수아 10장에 있는 말씀에 따라 더욱 천동설을 교리화하였기에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전하게 말하는 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갖은 모략을 하여 고통을 주고 무식하다고 하고 무시했습니다. 기독교는 천동설을 주장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추었다.’는 비진리를 현재까지 계속 주장하며 표적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가 이에 대한 진리를 주님께 배우고 제대로 가르치니 이단시해 왔습니다. 소경이 눈뜬 자를 인도하고 지적하는 격이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으면 어린아이라도 따라가지를 않습니다. 이미 40년 전부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는 네모나게 생겼다. 고로 끝은 낭떠러지니 멀리 여행 가지 마라. 끝까지 가다가 떨어져 죽을라.” 하는 식으로 알고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 <2009년 1월 21일 수요말씀> 내게 잘 배우고 잘 가르쳐라
칭찬의 효과와 요령
칭찬은 이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
람한테 들었을 때 더 맛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칭찬의 효과는 의외의 상황에서
그것도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서 들었
을 때 효과가 크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자를 좋아한
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칭찬도 듣는 사
람을 즐겁게 한다
● 구체적으로 한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칭찬에 비해 구체적
이고 분명한 칭찬이 상대의 마음을 움
직인다. "자네는 괜찮은 사람이야" 보다
는 "자네의 기안문은 간결하고 설득력
이 있어"라고 했을 때 더 효과적인 칭찬
이다.또한 칭찬에 대한 신뢰성을 줄 수
있다.
● 간결하게 한다.
말이 길어지면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
아진다. 진지하고 간결하게 칭찬하는
것이 더 깊은 인상을 주며 기억에도 오
래 남는다.
● 남앞에서 제삼자에게 칭찬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단지 쑥쓰럽고 어색해서 그리고
속보일까봐 자제할 뿐이다. 남 앞에서
칭찬을 하거나 제 삼자에게 간접적으로
칭찬을 전달하는 것은 칭찬받는 기쁨과
자랑하고 싶은 욕심 두 가지를 모두 충
족 시킬수 있다.
● 사소한 것을 칭찬한다.
칭찬에 인색하게 되는 것은 사소한 감
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장점들을 찾아 칭찬을
해 주었을 때 의외로 효과가 있다.
● 당사자 주변 인물을 칭찬한다.
집에서 미워하는 가족도 남이 욕하면
듣기 싫다. 자존심은 자신의 능력이나
외모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집단이 가
치 있다고 여겨질 때도 고양된다. 듣는
사람은 분명 자신이 칭찬 받지 않았음
에도 흐뭇한 기분이 든다.
● 우연 그리고 의외의 상황에서 칭찬
한다.
대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사람들
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지는 않는다.
평소에는 인사 한번 공손하게 하지 않
던 부하직원이 진급 심사 직전에 찾아
와 무엇을 부탁하거나 공치사를 했을
때 가벼운 칭찬이나 자신의 진솔한 감
정을 전할 때 상대에게 감동을 주게된
다.
*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새벽말씀
오늘은 월요일 새벽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나심에 왜 관심을 갖고, 왜 좋아하고 기뻐해야 되는지를 잘 모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관심을 가져야 될 이유는 구원자가 아니면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자 오기를 기다리고, 기도하고, 열망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메시아의 나심은 곧 자기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권의 나심이요, 우리는 사망권의 탄생이 아닙니까? 사망권에서 우리는 났고, 예수님은 생명권에 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권에 나심을 통해서 사망권에 있는 자들을 이끌어 낼 수 있으니 그리스도의 나심은 곧 우리가 난 것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축하하고 감격하며 기뻐하고 바라고 원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그렇게 해놓았을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지요. 물에 떠내려가는 세계에서 나면 계속 떠내려갑니다. 물속에서 난 사람은 물속에서 계속 떠내려감을 받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속에서 낳지 않고 육지에서 난 사람이 물속에 있는 사람을 이끌어 내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났다고 해서 금방 사람들을 구원하고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야 이끌어 낼 수가 있고, 때가 되어야 구원의 역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기나긴 30년이나 성장해야 그 때서야 비로소 모든 인생의 구원을 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사명을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 되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들 또한 때와 시기를 따라 형벌 속에 있던 자들이 그 형벌 기간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세상의 때와 하늘의 때를 맞추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때에 때를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원의 때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메시아라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구원을 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은 있을 것입니다. 메시아가 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그 시대를 보다 좋게 봐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났을 때부터 봐주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옥동자를 낳았을 때부터 가정 분위기를 좋게 하여 종들이나 집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대해주듯이 이런 영향권은 있었겠지만, 구원의 역사는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옥동자가 커서 “너희도 이제는 종의 입장에서 살지 말고 나와 같이 형제 입장에서 살자.”하고서 이끌어 낼 때는 성장된 입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세상에 오셨을 때에 금방 이들 종에 있는 자들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0대 때 일을 했습니다.
모세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애굽에 영향권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이 종노릇한지 4백년이나 긴 세월이 끝나는 기간에 있었습니다. 그 때 모세는 났고, 성장하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나고 금방 구원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고서 근 몇 십 년 동안 준비했다가 그제서야 구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자의 구원 역사가 일어나는 그 때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복 있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때를 잘 맞추어서 움직이는 사람이 얼마나 복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나심에 관심을 안 가지면 안 된다.”입니다. 예수님이 나셨다면, 메시아가 나셨다 하면 그 시대가 그만큼 좋아지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 역사에 손을 안 댔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때쯤 되었으면, 메시아가 났을 때쯤 되면 이미 메시아가 나가서 복음을 펴야 되기 때문에 모든 여건을 좋아지게 만드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러 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벌써 봄이 되어서 땅은 녹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으로 모든 환경과 온 세계적인 처세가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치를 논할질데, 지금 이 시대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대의 역사가 진행되니, 성약의 구원 역사가 진행하니까 지금 온 세계의 모든 처세가 그야말로 완전히 변화가 되었습니다. 공산권 세계는 완전히 민주주의 세계로 금방은 뒤바뀌지 않지만 서서히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고, 전쟁과 싸움의 세계는 평화적 세계로 가게 되어있고,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의 글과 예언이 이루어져 시대가 점진적으로 달라집니다. 각 나라 모든 체제가 바뀌고 주관이 바뀌는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지며 가는 것입니다.
때로 볼 대 또 사람들이 탕감을 받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 형벌 받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는 것입니다. 형벌 끝나면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니까요. 형벌이 끝나면 나와지니까요. 형벌 받은 사람은, 감옥의 형벌이 끝나면 나와야 되니까요. 나오는 기간쯤 되면 그 감옥에 있는 옥반장들이 죄수들 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7년씩 언도 받은 사람들이 “이제 한 달 남았네. 두 달 남았네.”하면 거의 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대해주는 입장입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각 나라나, 시대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런 고통 기간이 끝날 때쯤 되면 하나님께서도 대하는 것이 달라지게 되고, 그리고 시대도 달라지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면 무엇인가 막 달라져서 새로운 역사의 그 징조를 보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히 정치 체제가 바뀌고, 그리고 여러 징조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날씨는 분별하면서 때는 분별치 못하느냐? 여러 일어나는 징조들을 보라.”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피고, 가지가 연하여지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워진 줄을 알듯이 이스라엘 민족이 자꾸 회복되는 것을 보아라. 인자가 왔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랬습니다.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치로 볼 때 그러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시대가 돌아가니 두려워하지 말고 자꾸 점진적으로 해나가라. 시대가 자꾸 바뀐다. 하나님 역사가 시작되었으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어야만 세상이 모두 좋아지지, 특별히 좋아질 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으면 세상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안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세상이 좋아지고, 이상세계가 일어나고, 좋은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곧 우리가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게 되는 그런 소망과 희망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난 것을 소홀히 여기느냐?”
흔히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 한 청년이 나타나서 구원시킨다는데, 무엇을 시킨다는 것이냐?”했지만, 온 인류를 한 가정으로 딱 보면 됩니다. 온 인류를 한 가정으로 보고, 한 민족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로 보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경계선이 너무 높잖아요. 민족과 민족의 담이 높고도 높습니다. 그러니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크면 이해가 안 갑니다. 지구가 돈다고요? 이해가 안 갑니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축소시켜 놓고 돌리면 아마도 이해가 갈 것입니다. 너무 빨리 돌아갑니다. 모터처럼 빨리 돌아갑니다. 모터가 돌듯이 돕니다. 지금 지구가 회전하는 그 회전력을 보면, 자전과 공전하는 회전성을 보면 마치 선풍기 모터가 도는 만큼 빨리 돕니다. 축소시켜 놓으면 그렇습니다. 그것보다 더 빨리 돈다고 그랬습니다. 하도 큰 것이 돌기 때문에 가는 것 같지 않은데, 그것을 축소시켜 놓으면 어마어마하게 빨리 돈다는 것입니다. 아마 코끼리가 재주넘는 것을 보면 굉장히 느릴 것입니다. 그러나 개미가 재주넘는 것을 보면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를 것입니다. 이런 것도 다 똑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너무 큰 것을 이해 못하니 작게 이해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작게 보자는 것입니다.
“일개 가정으로 세계를 보아라.” 그러면 그 가정에서 누구는 경제적으로 뛰어야 될 자녀가 있고, 누구는 나가서 학문을 공부해서 학문적으로 뛰어야할 자가 있고, 누구는 세상에 나가서 농사짓고, 혹은 사업을 하고 이렇게 해서 서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가정이 이루어지며 부모 안에서 평화 세계가 이루는 입장과 똑같습니다. 누구는 가정을 구원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의학을 해서 아픈 자의 병을 고쳐주듯이, 예수님은 서부 나라에 있든지 동부 나라에 있든지 이스라엘 나라에 살든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정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그런 사명을 하게 했습니다. 가정의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 정치를 하듯이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지구상 어느 나라, 누가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이 세운 자는 온 인류가 따라가야 됩니다. 그 외에는 없으니까요. 한 사람이니까요. 우리가 우리 몸을 보아도 시계를 갖고 다니면 시계를 따라서 모든 시간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리고 또 몸 안에 연필을 갖고 다니든지 볼펜을 갖고 다녀야 글을 씁니다. 또 신발을 가져야 걸어 다닙니다. 이와 같이 온 인류 중 한 사람에게 사명을 주었지만 그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또 그를 통해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여건이 여러 가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그리스도의 나심은 바로 너희가 나음이 아니냐?”했습니다. 그러니 그를 환영하고 존귀히 여기고 감격하고 감사하여야 자기가 나는 것이 되지, 그와 상관없으면 자신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가 생활 가운데 느끼고, 그리스도가 나면 시대가 달라지고, 그가 일하게 되면 더 시대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를 깨닫지 못하느냐? 온 세계에 표적이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 이는 하나님의 성약 역사가, 부활기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체제가 바뀌어 지고 모든 역사가 뒤바뀌어지는 것을 정녕코 알아라. 나무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가 피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도록 하라. 인자가 와서 그러하다.” 이 나라도, 온 세계도 그러한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그리스도를 맞고 시대를 따라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귀가 있어서 깨닫고, 섭리 사람들은 더 깊게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옵소서. 영육을 힘있게 붙잡아 주시고, 연말을 통해서 하나님께 행할 것을 모두 부지런히 행하고, 아름다운 새해를 맞게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런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고 알아야 될 것을 다 알고 지나가야 되겠으니 은총과 은혜를 더해주시옵소서. 온 지구촌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되 이들이 시대를 깨닫고 영광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이 같은 징조가 나타남이 어쩐 일이뇨?” 궁금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빨리 시대의 말씀을 갖고 나타나서 “이런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러하구나.” 가르쳐주어서 속 시원한 역사가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모두 말씀 갖고 우물쭈물하지 말고, 신속히 빠른 구름들이 되어서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식을 충만케 주시고, 지혜를 더 찬란케 주시고, 담대함과 주 영광과 뜻으로 함께해주시옵소서. 온 지구상, 내가 거하는 이 땅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 온 인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요셉이 가는 곳에 은혜를 베푸심과 같이, 예수님께서 가는 발걸음에 은총을 베푸심과 같이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잘되고 형통케 해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만큼 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시고, 지식과 지혜를 더해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니 모두 잘되고 형통할지어다.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온 지구촌의 모든 자에게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 시대의 하나님 성약 역사를 시작하오니 하나님께서 시대에 베풀고, 각 나라의 체제를 바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깨닫고 알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존귀케 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니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옵소서. 주의 나심을 우리가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시대의 남을 확실하게 가르쳐서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게 해주시옵소서. 땅에 이상 세계 천국이 이루어지며, 구원을 받은 자들이 날로 불어나게 해주시고, 온 지구촌에 불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제자들이 우물쭈물하지 말고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치게 해주시옵소서. 그들도 한 사람들일 뿐이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청년들입니다. 자신들도 누가 복음을 전할 때 돌려서 전하면 도대체 깨달을 수 없듯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가르쳐주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사고들을 모두 갖고 이 설교를 들은 모든 자들은 그러할지어다.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 내일 새벽에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
ㅎㅎㅎ예술단수련회때 찍은 조은사도님♥ 모습ㅎㅎㅎ>ㅂ<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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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쓰레기 주우신 일 1
2007년 1월 15일에 CGM 봉사단을 위해서 주셨던 말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한 번 읽어보세요.^^
▶ 유럽 운동하러 갔는데 공원이나 골목길 쓰레기 너무 많았다. 내가 왜 쓰레기 골목으로 가야 하나? 내가 깨끗이 사는데 쓰레기 줍다 보니 30분 늦게 갔다. 남을 위해서 했다 라기 보다 내가 깨끗한 길을 가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했다. 내가 나를 기분이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남을 위해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생각과 삶인 것. 일반적으로 봉사라는 것을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셨다. 4차원의 삶인 것.
선생님 제자인 우광수라는 분이 “선생님! 이 쓰레기 꼭 주어야 해요? 선생님 이런 일 하실 필요가 없는데. 제가 할게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왜 막아!”하셨다. 내 기쁨을 거두어 가지 말라고.
내 제자의 마음속에 더러워진 것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주우셨다. 그들의 악을 제거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셨다. 1시간씩 시간 빼앗길 때 많았지만 청소하면서 많은 철학 배울 수 있었다. 휴지, 아이스크림 막대기, 음료수, 콘돔. 처음엔 콘도와 콘돔을 구분하지 못하셨다. 계속 머리에 오래 입력시킨 후 구분하게 되셨다. 공원에서 그 콘돔들을 많이 주우면 40, 50개씩 줍곤 하셨다. 십대들은 그것을 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갔다.
처음 그것을 주울 때 “뭐 이런 포장지가 다 있냐? 핫도그 포장지냐?”하고 생각하셨다. 광수도 잘 안주었다. “선생님 뭐 그런 걸 주어요?” “야 뭐 포장지가 이러냐?” “고무풍선인가? 불어볼까?” “선생님! 안 돼요. 지저분한 거예요!”
쓰레기 주우면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들 분별. 쓰레기 보면서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지꺼분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셨다.
청소할 곳 제일 많은 곳. 중국. 인구가 많아서. 하나씩 만 버려도 엄청나다. 하나님께 같이 청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사스병 생겨서 쓰레기 버리면 70만원 벌금 내게 하는 법이 제정. 아예 안 버리게 되었고 깨끗하게 되었다. 이 후 올림픽도 개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정원을 깨끗케 하는 관리자라는 사상을 지니셨다. 쓰레기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못 본체 하고. 그렇게 하지 마라. 희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정원이니 깨끗이 한다는 마음으로 하자.
-- 2007년 1월 15일 CGM 봉사단 말씀 중
▶ 어느 날 누가 식사같이 하자고 하였다. 어느 넓은 땅의 주인이었다. 선생님이 자기 정원같이 물주고 청소해 주니 그 주인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면서 한 번 보자고 한 것이었다. 기실 그 사람은 선생님이 자신의 사명을 알아주기 전에는 정말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 만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청소하다 만난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일반사람인데 괜찮나요?” “그래도 좋아요.”
그 사람은 선생님의 정신이 위대하다고. 보통사람 아니라고 하였다. 그 주인 옆의 친구들은 뭐 쓰레기 줍는 사람을 가까이 하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선생님께는 평생 친구하자고 말하였다. 평소 사는 삶을 가지고 선생님을 알아본 것이었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달리 볼 줄 안다.
-- 2007년 1월 15일 CGM 봉사단 말씀 중
어떠셨나요? 제가 이 말씀을 가지고 생명들에게 선생님을 증거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선생님을 새롭게 인식하고 참 훌륭하신 분 같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생명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한 번 전해보세요.^^
선생님이 쓰레기를 줍는 행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즉 내가 깨끗한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는 삶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 가운데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데 더러운 길로 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시는 그 모든 길을 하나님의 전으로 생각하시는 겁니다. 선생님이 거처하는 곳은 당연지사 성스러운 곳으로 만드십니다. 항상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실 때면 기도하시기에 좋은 장소를 먼저 고려하시고 주변을 깨끗이 하시고 집 안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하시잖아요?
이방인들에게는 아직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보통 봉사라는 것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높은 차원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잘 이해시켜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인 사회적 봉사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어느 특정한 상황과 시점과 장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통 봉사 활동은 매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이루어집니다. 혹은 어느 지역 공원을 주기적으로 청소할 수 있고요. 그러한 봉사의 정신은 희생입니다. 내가 좀 더 고생해서 남을 더 편하게 해 주자는 것이죠. (계속)
무조건 New
(랩)
신령한 기도와 번쩍이는 영감 번개같이 실천하며 주님과 함께 Let's Go~!
(노래)
주님이 부르 신다면 언제든 달려갈수 있어요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 달려갈께요
주님이 부르시면 무조건 날아가요 난 항상 준비 되어 있어요
태평양을 대서양을 인도양을 건너서도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훨
그누가 나를 불러도 쳐다도 안봐요 나는 멋쟁이
하지만 하나님 부르신다면 무조건 달려갈께요
하나님 부르시면 무조건 날아가요 난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지구넘어 우주지나 은하수를 건너서도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훨
님향한 내사랑 무조건 무조건이야 난 이쪽도 저쪽도 안쳐다봐 무조건 주님뿐이야
님향한 내사랑 최첨단 사랑이야 이리봐도 저리봐도 사랑 스런 주님은 내 신랑
주님이 부르시면 무조건 날아가요 난 항상 준비 되어 있어요
태평양을 대서양을 인도양을 건너서도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훨
하나님 부르시면 무조건 날아가요 난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지구넘어 우주지나 은하수를 건너서도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
주님이 부르시면 무조건 날아가요 난 항상 준비 되어 있어요
태평양을 대서양을 인도양을 건너서도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훨
무조건 날아가요 훨훨훨 난 항상 준비되어 있어요
주님만 향하는 나는 멋쟁이~!
출처 : 만남과대화 - vision님의 무조건 New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새벽말씀
또 말씀을 전해주겠습니다. 금주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지 모르고 믿으면 하나님도 속상하시고, 모르고 믿으면 우리도
막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라.”는 이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본인들이 겪고 본인들이 아는 그 상식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역사 해 오신 성경을 보면 그래도 많이 압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시대에 대해서, 그리고 그 환경에 대해서 역사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하면서 알아야 됩니다. 악인에게 대한 하나님, 선인에게 대한 하나님, 중심자에게 대한
하나님이 다 다릅니다. 각각 자기의 사명대로 대한 것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한결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나 악인들이나 어려움은 다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누구든지 어려움은 당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려움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지켜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이고 자기 것이니까 하나님이 그때그때 어려움을
지켜주시고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반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서로 의논해서 그것을
해결하며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벗어났을 때는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끼리
아무리 의논해도 막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말하기를 “내가 외롭고 쓸쓸하게 있어도 하나님이 옆에 계시구나.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내가 집에서 쫓겨서 어디로 간다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야곱도 집에서 악인인 형의 손에 쫓겨서 멀리
도망갔을 때에 ‘무슨 죗값인가? 내가 형 대신 축복을 받아서 그 축복의 죗값인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겪어보니까, 하나님을 겪어보니까 그것이 아니고 야곱이
축복을 받았으니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게 되었는데, 악인인 형은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역사 하신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하고는 거기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의인들이 늘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의인들에게도 고통과 아픔과 어려움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의의 세계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악으로부터 오는 고통입니다.
그 때 의인들이 심히 낙심도 하고, 낙담도 하고 그럽니다. 항상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시대가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죽 오면서 요셉이 또 그런 환난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열심히
구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 앞에 가서 “하나님이 나에게 함께 하셔서 이런 일을 하게
하셨다.”고 시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함께 하셔서 꿈을 풀게 바로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지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나님을 말해주고, 하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늘 자기와 함께 했다는 것을 항상 신앙으로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는
“형제들이 그렇게 나를 모 박히게 대했으므로 내가 이와 같이 이곳으로 오게 되어서
총리대신까지 하게 되었다.”고 요셉이 그렇게 풀었습니다. “형제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했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더 잘 되었다. 그런 환난을 받고, 어려움을 받음으로 이렇게 되었다.
만약 애굽으로 팔지 않았으면 어떻게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까? 결국은 이렇게 잘 되었으니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이 서로 풀고 잘 지내자. 이것은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셔서 된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죽 오면서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잘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은 결국은 잘 되게 하셨다는 것을 시인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을
늘 섬기며 말씀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얘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모세는 어떠하신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보는 철학, 관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복이고, 안 들으면 저주다.”했습니다. 백성들을 늘 봤기 때문입니다.
자기에 관한 것도 늘 봤습니다. 그렇지만 그 신앙관은 하나님으로 꽉 찼습니다. “이랬든지
저랬든지 사람이 하나님 말을 잘 들어야 되지, 듣지 않으면 화이고 들으면 복이다.”그러면서
모세가 하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가진 관과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절대적인
하나님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도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들어서, 백성들에게 전해주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런 관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너무
말을 안 듣고 하는구나.’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일반 선지자들과 다르니까 기도 생활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구원주라.’하며 구약에 그들을 구원하라고 세운 큰 대표적인
인물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기에 크게 보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신약 시대의 말씀을 받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오면서 다윗이나 다니엘, 이사야 선지자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 관을 가졌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이 백성을 낳았습니까? 내가 낳은 백성입니까? 받는 고통이 너무
큽니다.”하고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나 하나 같으면 괜찮은데 이 백성들로 인하여
받는 고통이 너무 큽니다.”라는 이야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일이 일어나면 자기도 당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기 한 사람에게 일이
안 일어나면 괜찮은데, 백성들에게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다 지도자에게 갑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터졌다. 이런 걱정이 있다. 누가 고통받고 있다. 누가 사고 났다.’하는
이런 것들을 지도자가 전부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말을 안 들으면 또 모세에게
그 고통이 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몸서리치면서 인생을 살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 그렇게 죽 오다가 다윗이 왔습니다. 다윗도 사울로 인해서 7년 동안 모진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만일 왕을 안 했으면, 사울 밑에서 백성 가운데 살며 그냥
시골에서 살았으면 전혀 그런 고통을 안 받았을 것입니다. 항상 보면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면 그런 모진 고통이 옵니다. ‘왜 하나님을 믿었는데 이런 모진 고통이 오나?’하지만 우리가
큰집을 지으려면 고통이 오지 않습니까? 집을 지으려니까 하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집을 하나 지어도 너무 너무 고통이 오더라구요. 나도 ‘괜히 집을
시작했다. 그냥 옛날에 살던 집에서 살 걸.’하는 그 정도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아주 뼈저린 고통을 받으면서 집을 지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데 왜 이런 고통이 오나?’하지만, 존재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동물이나 사람이나 전부 자기 존재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이 맡긴 사명의 존재, 각종 각색의 존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에게도 그런 고통은 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천국이 어렵다. 고통의 세계다. 고난의
세계다. 역경의 세계이다.’할 정도입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모든 일이 악인에게도 닥치고
의인에게도 닥친다.”했습니다. 솔로몬이 가만히 보니까 “악인도 닥치고 의인도 다 닥치더라.
모든 사람에게 다 닥치고 있더라. 헛되고 헛되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왕이니까
다 봤습니다.
이와 같이 존재하기 위해서 닥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밥을 갖다놔도 밥을 깨물어 먹고
소화시키려면 그만큼 수고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그렇게 즐거우면서도 힘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즐거우면서도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이 들어갑니다. 그것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도 그런 고통은 없지만, 존재하려니까 거기서 섬기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그런 것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존재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은 다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너무 모르고 살다 보면 사람들이 쇼크를 받습니다. ‘왜 천국의 섭리사인데, 하나님이
지상천국을 이루신다는데, 지상천국의 세계에 환난이 가장 많이 있을까? 그러면서 역사가
이뤄져 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죄가 있어서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인가?’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가지로 굳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죗값으로 인해서 받는 것도
있고, 그리고 앞날에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어려운 산을 넘어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서는 ‘아, 이것을 받기 위해서 이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것에
있어서 잘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받았구나. 받을 것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받아놓고 후에
잘 되었구나.’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받을 고통은 받아버려야 됩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 받아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조심하고 스스로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된다.”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환난을 받아도, 어려움을 받아도 그래도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통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 고통이 옵니다. 또 고통이 오니까 거기서 하나님을 믿다가 마는 사람이 거의 90%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신앙을 하면서도 믿다가 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똑같이 고통이 오는구나. 똑같구나.’ 자기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들을 보면
친구들도 그런 고통이 있고, 똑같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다 가리다 보면 먹을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또 죄지을 까봐서 이것저것 가리다보면
늘 위축감 갖고 살게 되고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지,
그냥 이것저것 막 살다보면 깨끗하게 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함으로 깨끗하게
되어서, 깨끗한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미리 알고, 인식하고 살아야 됩니다.
농사지을 때 ‘아, 너무 좋다.’고 가을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직접 겪어봐야 압니다. 겪어보면 ‘이래서 농사 안 짓고 돈을 주더라도 그냥 쌀을
팔아먹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농사 안 짓고 쌀을 팔아먹으려니까
가서 직장 생활하고, 밤낮주야로 직장을 다녀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래도
덜 하거든요. 농사 짓는 것보다 그것이 더 힘듭니다. ‘다 힘들구나. 농사져서 힘들고, 직장생활
다니는데도 힘들고 다 힘들구나. 그러면 장사 해볼까?’하는데, 장사해도 힘든 것입니다.
‘언제 10원씩, 10원씩 이익 남겨서 살 수 있나? 아, 이것도 못하겠구나.’합니다.
이 세상살이가 다 힘든 것입니다. 다 힘듭니다. 그래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노력하고 그러면
조금 더 나아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다윗은 이런 역경과 고통을 받으면서 그냥 끝났느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 7년
고통받고서 33년 동안에 그래도 잘 되었습니다. 그러니 투자를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7년 동안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늘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받으면서 울고 짜고 하면서
말씀을 여러 가지로 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굉장히 많이 표현을 했습니다. 어느 왕보다
다윗이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의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 울고 짜고 부르짖은
사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23장에서 “하나님은 그래도 나의 목자가 되셨다.
그리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양을 길러 봤습니다.
“결국은 그와 같이 해주셨다.” 양들은 목자가 살펴주면 최고입니다. 더 이상 없습니다. 자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국은 그래도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해오셨다. 그리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가 많았는데, 참 두렵고 떨리고 공포증에 살았는데, 나를 안위해 주시고
붙잡아주셨다.” 다윗은 일개나라 왕이 그 군인들을 다 풀어서 잡으러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컸습니다. 차라리 그 공포가 덜하게 아주 죽는 것이 낫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아주 죽어버리면 덜합니다. 그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늘 겪었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그런 가운데 주의 지팡이로 나를 안위해 주시고, 보호해주셨다.
원수의 목전에서, 원수가 자기의 어떤 목적을 실행하려고 하면 그때에 나를 살려주셨다.
포기할 정도로, 아주 포기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건져주셨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다윗은 7년 동안 수십 번, 수백 번 그랬습니다. 작전이 2-3일에 한 번씩 있었는데,
그 작전이 모두 다윗 잡으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마음을 놓고 못 살은 것이 나와
있습니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살았습니다. 신구약 성경 중에도 다윗이 그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일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3년을 느꼈고, 다윗은 7년 동안 느꼈습니다.
그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렇게 많이 느꼈습니다.
선생은 월남 전쟁터에서 한 3년 정도 느꼈고, 섭리사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한 25년 동안
있었습니다. 죽음과 그런 고통을 한 25년 동안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늘 주님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결국은 사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런 말씀을 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을 겪으니까요. 죽음의 공포가 오니까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있었나?” 여러분은 모릅니다. 내가 여러분이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한 명도 모릅니다. 나만 압니다. 내가 맨날 웃으면서 하면 ‘아, 이제 편하게
되었는가보다.’ 그럽니다. 여기 월명동에 있을 때도 사람들이 우리가 나무 심는다고 감옥에다
갖다가 가두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해야 압니다. 여기 월명동을 개발할 때도
“저놈을 꼭 갖다가 감옥에다 가둔다. 꼭 갖다가 가두어 버린다. 가둬서 꼼짝 못하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몰랐지요? 그렇게 아주 계획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진산 사람들이
소스를 줬습니다. “정총재, 나무 캐다 심는다고 산림청에 얘기를 해서 꼭 갖다 가둬버린단다.
얼른 도망치던지 해야되겠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한 공포가 있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얘기를 안하고, 선생님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얘기를 안 하면 모릅니다. 그냥 즐겁기만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거기서는 청중과 어울리며 여러분들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덜했습니다.
그리고 월남에 있을 때도 누구보다도 죽음의 고통을 제일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겪었나
안 겪었나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선생님은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더 해야된다. 더 일을 해야된다. 더 나가야 된다. 더 이렇게 해야된다.”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비양심적으로는 못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양심적으로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하나님 믿는데 양심상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다보면
그들에게 닥칠 죽음이 내게 닥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닥친 것입니다. 더 많이
닥치니까 책이 나옵니다. 차라리 아주 죽어버렸으면 괜찮은데, 그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제일
컸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는 삶에 대한 공포가 있었습니다.
다윗도 이런 공포를 겪었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다윗이 쓴 것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이런 공포를 느꼈구나.’ 우리는 여기서 상상도 못합니다. 그런 공포를 사실상 성경에
다 못씁니다. 다윗이 자기 겪은 것을 다 못썼습니다. 다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겪은 것을 다 못씁니다. 써도 글로 그것이 다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짧은 글로는 읽어서 그것이 다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단하게 “여호와여,
나를 살려주십시오. 나를 죽음에서 건져 주십시오.”하면 어떤 죽음인지 잘 모릅니다. 그 상황을
다 쓰려면, 한 사건을 쓸 때 성경 한 30장씩 써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쓸 수가 없습니다.
그냥 몇 줄 가지고 쓰니까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들이 모르고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알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알고 믿어라. 하나님을 알라. 인생사는 것을 알라.
오직 하나님이다. 월명동에 글을 써 놓은 대로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알라. 형제들
마음을 알라. 가서 얘기하라. 대화를 해 보라. 마음이 아픈 형제들에게 가서 얘기를 해줘라.
대화를 해줘라. 그들도 마음이 아프고 있다. 가서 대화해라. 네가 마음이 아프듯이,
네가 고생하듯이 아프다. 그것이 십자가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밥만 먹으면 남을 위해 사셨다. 시돈땅, 사르밧 등 모든 각종 각색의
곳을 돌아다니시면서 그들을 위해 살았지 않느냐? 모두 그래서 그들을 구원을 시켰다. 배고픈
자, 아픈 자, 고통 당하는 자, 병든 자들을 구원을 시켰다.” 이들도 그리함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너희들이 하나님을 알라. 하나님 마음을 알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라.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라. 그의 손발이 된다고 하지 않았냐? 그냥은 모르니까 자기를 편하면
안 된다. 그들을 구원시키고 그들과 같이 평안 하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기도했으니 함께 해주시옵소서. 온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구상에 얼마나 공포가
있는 나라가 많은지 모릅니다. 전쟁의 공포가 있습니다. 왕을 해도 공포, 백성들도 공포입니다.
민족의 공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도 많고, 서로 전쟁하고 으르렁거리고, 모두 나쁜 단체들
만들어져서 고통이 주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 다 없애주시옵소서. 오! 하나님께서 없애주시기를
원합니다. 천천지 원한이니 없애주시고, 지구촌이 편안케 되게 해주시옵소서. 무력의 세계들을
다 해결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사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이
2천년부터는 평화의 역사를 한다고 하니까 평화의 역사를 이들이 안 하면 안되게끔
하나님께서 해주시옵소서. 평화는 구원의 역사인데 안 하면 안되게끔 하나님께서 독점해서
흔들어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억울한 일 많이 당하고, 두려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은 의로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데, 악인들이 판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지난 모든
이십세기까지 2천년 동안 오면서 얼마나 전쟁과 공포와 아픔과 떨림이었습니까? 19세기는
암흑의 세계였었는데 이제 평안한 세계, 성약역사가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친히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들이 기도하게 해주시옵소서. “둘 이상이 내 이름을 위해 기도해도 들어주는데
왜 못하느냐? 모두 합심해서 기도하라. 중언부언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무엇을 기도할 지를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괴롭게 해주는 것이다. 괴로우니까 기도하게 하신다. 자기만
위해서 하지 말고 남을 위해서 하도록 하라. 그들과 같이 구원을 받으라. 너희는 구원을
받았으니 같이 구원을 시켜야 되지 않겠느냐? 왜 구원 받아놓고 가만히 있느냐?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쓰라림을 알아라.” 하나님께서 은혜와 은총을 주시고 의를 채워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보시옵소서. “모든 섭리를 나간 사람들도 고통스러워한다.
마음이 아파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간구해 줘라. 하나님께 몸부림치며 해주어라.
너희들이 살았을 때 못하면 언제 하겠느냐? 그것이 너희 의가 되리라. 너희 문제를 같이
해결해 주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축복해주시옵소서. 의와 사랑을 주시옵소서.
은총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영광과 의와 존귀로 함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과 함께 하고 영원할지어다. 온 지구상의
각 교회들이 내 말을 듣고 깨닫고 형제들을 위로하고 붙잡아 주고 늘 고통을 같이 하고 기쁨도
같이 하게 해주시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가 함께 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들에게 함께 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JMS 정명석 목사님] 조은소식 제2호 때가 되면 높이리라
때가 되면 높이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베드로전서 5:6 -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 -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
첫째, 겸손하라. 하나님의 손 아래서 겸손하라. 하나님 앞에는 겸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 일반 사람들 앞에서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는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진 것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것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계시고, 권력도 지식도 물질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왕이 가지고 있는 백성의 숫자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계시니까 하나님 앞에는 겸손하라. 하나님 앞에는 지식 자랑할 것도 없고, 물질 자랑할 수도 없고, 권력과 명예 자랑할 수도 없다. 하나님 앞에 너희는 겸손하라.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행하시는 하나님
저는 어떻게 겸손해지는 것을 배웠는가 하면, 깨닫고 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있고 많이 배워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고, 몰라서 교만해집니다. 또, 성격상 교만해집니다. 많이 가졌다고 교만해지기도 하지만, 많이 안다고, 명예를 많이 얻었다고, 그리고 감투를 썼다고 교만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교만합니다. 왜냐하면 성격상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격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어떻게 그런 것을 고쳤는가 하면, 말씀을 깨닫고 고쳤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90% 이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네. 내가 한 것이 아니네. 하나님이 도와서 한 일이니… 내가 한 일 같으면 혹시 모가지를 빼밀고 어깨를 올릴 수도 있겠는데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90% 이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그것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그런 마음들이 아예 없어져 버렸습니다. 평생 동안 그런 마음들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거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구나! 작은 것도 90% 이상 하나님이 행하시고 큰 것도 90% 이상 하나님이 행하신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으로서 같이 동참해서 해야 되기 때문에 10%를 주셔서 같이 하고 있는데 10% 하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잘난 척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겸손한 다윗은 하늘로 치솟게 해주셨고 교만한 사울왕은 땅바닥에 떨어져서 그야말로 걸레가 되게 만들고 쓰레기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교만하면 아주 치명적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잠언 가운데에도
교만은 넘어짐의 선봉이다. 교만하면 무조건 넘어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잠16:18).
대통령보다 귀한 하나님의 사람
여러분들도 무시를 많이 당해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들이 무시하고, 신앙인은 신앙으로 무시하고, 일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무시할 것입니다.
저도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무시를 당했었습니다. 사람이 간판을 가지고 말하면 와! 하고 간판이 없으면 말해도 별로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에 대통령이라고 해봤자 욕만 얻어먹지 않습니까? 국회의원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끝납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의 국회의원들을 압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의 옛날 1500년 전의 국회의원 중에 하나를 외우는 사람은 한번 외워보십시오.
왕들도 몇 명이나 있었는가 한번 외워 보십시오. 악한 왕들이 몇 명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최고의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최고입니다.
지구상의 사람들이 아들딸들을 낳으면 너는 판사 하라. 너는 의사 하라. 한다는데 의사도 귀하고 판사도 귀한데 하나님의 사람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아예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머리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체입니다. 손가락, 발가락, 발, 허벅지, 무릎 이런 지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실천으로 본(本)을 보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보고도 말씀은 옳은데 예수님의 행실이 틀렸다고 무시를 당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창녀촌에 다녔겠습니까? 제사장이 들어가야지 메시아가 창녀촌에 다니면서 전도해야 되겠습니까? 저희들이 안 하니까 이와 같이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주려고 본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인데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앉아 있어야 되겠습니까? 어떤 임금이 신하들의 발을 씻겼다는 역사가 나옵니까? 안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인데 어떤 세상 임금이 그에 비교가 됩니까? 세상의 성인들을 예수님과 같은 성인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예수님과 비교가 안 됩니다.
겸손을 가르쳐주신 예수님
공자는 가정, 부모에 대해서 조금 가르쳐줬고, 석가모니는 인생이 허무하다고 가르쳐줬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알라고 가르쳐줬는데 예수님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도대체 알 수가 없는데 그를 가르쳐줬습니다. 그러니까 큰 자입니다. 큰 자를 가르쳐야 큰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가정에 대해서 안 가르쳤습니까? 가정에 대해서 철저히 가르치고, 자신에 대해서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쳤는지 압니까?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는 들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남의 눈 속의 티만 빼라고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때에 행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
두 번째, 사람들은 항상 조급하여 제때 못 행한다.
한 박자 빨리 행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구 경기를 보면 대개 급할 때 한 박자 빨리 찹니다. 전문가 선수들이 되었으니 많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일반 선수들은 꼭 보면 조급해서 한 박자 늦게 차도 되는데 한 박자 빨리 차서 골인을 못 시키고 패스를 제대로 연결을 못합니다.
비유를 들어 말할진대 그와 같이 조급해서 한 박자 빨리 행한다고 했습니다. 축구를 해도 무릎 밑에 내려왔을 때 발로 차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내려오기 전에 때리려고 하니까 제대로 안 맞는 것입니다. 배구공을 받는 것도 그렇고 모두 한 박자 빨리 해서 비틀어진다는 것입니다.
여유있게 하라, 때가 되면 높이리라
게으른 사람은 한 박자 느리게 해서 문제이고 부지런한 사람은 너무 성격이 조급해서 한 박자 빨리 해서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유있게 하도록 하라. 여유있게 한번 해보십시오. 모든 생활들도 조급하게 하지 말고 모든 문제도 너무 조급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는데 뭐하러 그러냐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는데 조급하게 하지 말도록 하라. 하나님이 해주시니까.
꼭 제때 행해야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1초도 늦지 않게 제 때에 행해야 됩니다. 게으른 사람도 꼭 제때 행하라. 게으른 사람은 한 박자 빨리 해서 제때 행하고, 조급한 사람은 한 박자 느리게 해서 제때 행하라. 이런 말씀입니다. 제때 꼭 행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잘되게 복 받기를 원합니다. 때가 되면 너희들을 높일 테니까 한 박자 빠른 사람들은 조급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사울왕
한 박자 빨리 해서 실패한 사람을 몇 명 이야기 해줄까요? 성경에 사울왕은 선지자가 명한 대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그 시대에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꼭 반드시 무슨 일을 할 때 나와 같이 하고 머리가 나니까 나와 같이 해야 됩니다. 당신을 내가 하나님께 들어서 왕으로 추천했으니까 책임이 큽니다. 그러니까 사울왕이여, 반드시 모든 일을 할 때, 정치할 때 나에게 의논하고 같이 해야 됩니다. 하니까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지요.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블레셋 대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꼭 전쟁하러 나갈 때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여유있게 하고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어디를 갔는데 찾아도 없으니까 이 바쁜 때 어디 갔단 말이냐? 찾으니까 없다. 반드시 같이 한다고 해놓고… 하다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네끼리 기도하고 전쟁하러 떠났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와보니까 자기를 허수아비로 남겨 놓고 그냥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간만의 차이로 왔습니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아니, 적들은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적이 이 앞에까지 와도, 담 너머까지 와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제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까? 당신이 옛날에 염소 치다가 왕이 되었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렇게 조급합니까.
우리가 늘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사울같이 한 박자 빨리 행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갈아치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너무 무섭지요? 한 박자 빨리 행했다고 갈아치웠습니다. 그러니 조급하게 행하지 마십시오.
조급한 자는 한 박자 느리게,
게으른 자는 한 박자 빨리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급하게 안 차도 되는데 급하게 차서 다른 데로 날아가는 볼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빨리 차야 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안 들어가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한 박자 느리게 하면 안 됩니다. 한 박자 빨리 해도 안 됩니다. 뒤에서 쫓아오지도 않는데, 공격진이 뒤에서 쫓아오지도 않는데 여유 있게 차도 되는데 급하게 차니까 다른 데로 아웃 되는 것입니다. 골대를 맞고 나가기도 합니다. 볼 차는 것을 비유로 들어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한 박자 빨리 해서도 안 된다. 그게 큰 폐단이다. 한 박자 느리게 해도 안 된다. 큰 폐단이다. 너희들의 삶도 월드컵처럼 하나님의 큰 행사를 지켜보면서 깨닫고 삶도 그렇게 살도록 하자. 말씀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동적으로 행하십니다. 자동인출기를 자동적으로 되게 만들듯이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겸손하고 충성하라,
때가 되면 높이리라
저는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고 겸손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계급장에 스타들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어깨에 스타가 달려 있습니다. 순수하고 웃기게 생긴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얼굴도 못생기고 나는 가진 것도 없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무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정말로 계급장에 별들이 달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는 조급한 자는 한 박자 느리게, 게으른 자는 한 박자 빨리 그렇게 말씀의 핵심을 삼겠습니다.
말씀/ 정명석 총재
웨슬레 신학을 졸업하고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창립했다. 스리랑카의 유네스코 산하 오픈인터내셔널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의 총재로서 매년 평화를 위한 예술, 스포츠 등의 활발한 문화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영감의 시> <하늘말 내말> <비유론> <생명의 말씀> <새벽단상> <구원론> 등이 있다.
출처: www.jms.co.kr(만남과 대화) http://jms.jms.co.kr(생명을 사랑하라)
[JMS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이 있는 곳]
JMS란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라는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JMS가 정명석 목사님의 이니셜과 같다하여 단체명을 현재의 기독교복음선교회로 개명.
그러나 계속 언론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JMS라고 저희 단체를 지칭하고 있기에
저희도 JMS가 아니라 할 수 없어 JMS라고 합니다.
JMS는 언론의 보도처럼 성적으로 문란한 곳이 아닙니다.
JMS는 지구촌 어느단체 보다도 깨끗하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JMS는 술도 담배도 마약도 전혀 하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이성적으로도 아주 깨끗한 곳이 바로 JMS입니다.
언론의 보도만 믿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JMS 교회를 가 보세요.
JMS 정명석 목사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JMS의 교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시고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새벽별들의 모임 J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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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섬겨야 하는가?
▶ 결혼해서 살 때 자기 할 일만 하면 뭐가 멋있어? 라면을 삶아먹을지 몰라서 부인에게 삶아달라고 하고 애인에게 삶아달라고 해야하는 것이 아니여! 삶으면 더 잘 삶고 더 맛있게 하는데. 특기가 있는데 왜 그런고 하니 결혼을 해서 사는 멋을 내려고 하는 거여. 어떤 사람은 세탁기를 사주고 세탁기를 전기 많으니까. 돌리지 마라 빨래하자고 여자가 남자가 더럽게 약다고 했어요. 내 손이 다 닳게 한다고. 그러면서 남자를 싫어했어. 어느 날 생일날 털어놓은거여 남자가. 정말로 더럽게 내 마음을 모르네. 왜 그런지 아냐고. 그 사랑스런 손으로 빨아주는 것을 보고 싶어서. 정성을 얻고 받으면 나도 무언가를 해주지 않겠냐고. 그 때 깨닫고 그게 맛이여. 사는 맛.
요새는 모두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 것으로 하니까 정이 덜 들지. 기계만 해주니까. 기계가 고맙지. 네가 나 빤스 빨아줘서 너무 고맙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안 고마워! 나는 빨래기계가 너무 좋다. 오히려 시간이 될 때 그 기계를 좋아하고 여자는 멀리하고. 이와 같아 비유인데. 하나님도 그러하다. 하나님도 손수 해주기를 원해. 우리를 전지전능하지만 손수 와서 손도 잡아주고 얘기도 해주고 조그만한 것도 도와주고. 그렇게 인생을 사는 거여. 손수. 그것이 얼마나 크겠어! 다시 말하면 산에 올라갔는데 기계가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보다 손을 잡고 올라가면 얼마나 좋겠어. 정성스럽고. 왜 나는 저거를 태워서 안 올라보내지! 다른 사람들은 다 타고 가는데. 그 남자는 손을 잡고 산에 올라간거여.
가다가 김밥도 먹고 얘기도 하면서 너무 모르니까. 너무 남자에 대해서 모르니까 사랑을 모르는거여. 우리의 섭리의 신부들이 하나님을 너무 못 모셔. 모시고 섬기고 하는데 더 아기자기 하게 모셔야 한다. 그래서 자동시스템보다 손수 손 빨래하는 것을 하고 전기밥솥으로 하기보다는 손수 쌀을 씻어서 밥해주고 하면서 애인에게 정성을 들이듯이 하나님께도 그러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 인생 재밌게 사는 법은 하나님과 늘 대화하고 없는데 어떻게 대화를 해요! 그러니까 너희가 육적이지. 영은 옆에 있어요. 하나님 백번 부르면 다 대답한대요. 너희들이 못 들을 뿐이지. 내가 한번 불러보니까 대답을 하시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부르기만 하지 말고 말을 하라고. 네가 못 알아들었지. 그러니까 늘 대화하며 얘기하면서 살아야 해요.
▶ 하나님은 늘 같이 붙어살기를 원해요. 어디가도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싫어해. 누구든지 섭리사의 모든 사람들은 혼자 사나고 생각을 하지마. 누구든지 주와 같이 산다 주와 한집에서 산다고 생각해야 해요. 하나님은 같이 생활하신다 하고 여러분과 같이 살고 있어요. 혼자 있다 우리끼리 있다고 생각하면 큰 일이 나. 방에서 주님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을 해야 해요.
▶ 물건도 하나님 것이 따로 있고, 인간 것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겠지요? 하나님과 같이 살려면 그렇지요? 온 지구상에 있는 것 말구요. 이 방안에 있는 것일지라도, 여기 이 홀에 있는 것일지라도 하나님 것이 따로 있을 것이 아닙니까? 내 것이 따로 있구요. 나는 반드시 그것을 해놓아 버렸습니다. 하나님 것과 내 것을 구분했습니다. 신랑 것이 신부 것이 되지만, 신랑 것과 신부 것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것은 그렇지만 따로 사용할 것이 아닙니까? 반드시 그렇습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것을 반드시 존귀히 여기고, 귀히 여기고, 잘 닦아주고, 깨끗하게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무엇도 해주고 그래야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꼭 있는 것 같이 모시고 살아보십시오. 그렇게 한 달만 살아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요. 그렇게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옆에 따라다닌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 보십시오. 그렇게 한 달만 살아 보십시오.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그렇게 해도 하나님이 안 불러집니까? 안 찾아집니까? 노래가 안 해집니까? 예수님이 안 찾아집니까?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새벽말씀
▶ 선생님께서 20년 이상 산에서 기도하면서 진리를 접했을 때, 딱 마지막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전체 중에서요. “인간은 모르고 산다.”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공기를 실감하고 사는 줄 아느냐? 공기를 매일 써먹습니다. 제일 많이 써먹습니다. 지금도 써먹고 있잖아요.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고 합니다. 이 공기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어서 5분만 거두어 가면 다 죽는다. 3분만 거두어도 다 뻗는다. 2분만 거두어도 다 뻗어 버린다. 여러분들이 2분 동안 숨을 안 쉬어 보십시오. “그래도 그것을 실감하면서 공기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지 못하고,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생명과 연관이 있고 써먹으면서도 실감을 못 한다.
하나님도 공기와 같이 늘 너희에게 역사 하는데 실감을 못하고 살고 있다. 비유를 들 때 그와 같이 그러하다.”합니다. 모르고 삽니다. “하나님을 실감하고 살아라. 느끼고 살아라.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고 깊은 단계에 들어간 것이나 똑같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으려면 알아야지. 과거에 사람들이 하나님 잘 믿고, 예수님 잘 믿었는데 왜 다 떨어졌는지 아느냐?” 그냥 우-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새벽말씀
▶ 하나님 것을 귀하게 보고, 닦고, 씻고, 뭐하고 해야 됩니다. 내가 한번은 아팠습니다. 몸이 너무 너무 아팠습니다. 도대체 내가 기도해도 안 낫는 것입니다. 누가 기도해줄 사람도 없고, 기도 받을 사람도 없고 큰일 났었습니다. 이러다가 혼자 큰일날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 내가 늘 닦던 단상이 있었습니다. 단상을 늘 닦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의자를 닦지 않습니까? 단상의 의자는 하나님께 구상해 달라고 해서 그것 받아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의자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없습니다. 구상을 받았으니까요. 거기를 매일 닦고 그랬습니다. “반드시 여기를 지나가다가 앉으십시오. 하나님 집이니까 여기를 들렀다 가십시오. 그냥 가면 내가 너무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는 신이니까 쳐다만 봐도 거기에 앉은 것이나 똑같아. 물론 가기도 하지만.”하셨습니다.
그 때 그 의자를 잡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내가 지금 아파서 죽겠습니다.”했는데 그 말하면서 바로 싹 나아 버렸습니다. 어느 의사도 그렇게 빨리는 못 낫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나아 버렸습니다. 거짓말 같이 나아 버렸습니다. 그렇게 정성들이고 하나님을 모시니까 하나님 것이 다 능력을 발하게 하시더라구요. 내가 그 전에 산에 있을 때는 이런 것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것이 없으니까 성경으로 했습니다. “하나님, 나 머리 아파요.”하며 성경을 머리에 대며 기도했고, “나 좀 낫게 해주십시오.”하고 성경을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새벽말씀
▶ 하나님 것은 권위 있게 하나님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너도 여기 앉아.” 그 음성이 나기 전까지는 내가 그 의자에 안 앉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안 나더라구요. 내가 거기에 앉아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면서 권위 있게 하나님을 존경하고 공경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로 선생님을 못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공경심이 없다고, 존경심이 없다고 못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길게 털이 난 도사들을 보면 첫날에는 “도사님 만나서 너무 감사합니다.”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가서는 “왜 이렇게 털이 많이 길었어요?”그럽니다. 수염이라는 소리가 털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다. 모세도 그래서 못 보게 한 것이다. 감히, 인간의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새벽말씀
"회개 횟수가 죄 짓는 횟수보다 많은 사람은 산 사람이다."
제목 : 편파보도 내용에 대한 기독교 복음 선교회의 반론보도 2007년 6월14일 13시 43분 2초
2007년 6월 2일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편파보도 내용에 대한 기독교 복음 선교회의 반론보도입니다.

정명석 목사님을 바로 바라봐주세요~
편견과 오해가 아닌 사실을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