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음계
* 음계 (scale)
--- 계이름 ---
도 -- 레 -- 미 - 파 -- 솔 -- 라 -- 시 - 도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 반음 1개 = 1프렛
* 온음 = 반음1개 + 반음1개
2--- 코드 ---
C -- D -- E -- F -- G -- A -- B -- C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기타의 음계
* 음계 (scale)
--- 계이름 ---
도 -- 레 -- 미 - 파 -- 솔 -- 라 -- 시 - 도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 반음 1개 = 1프렛
* 온음 = 반음1개 + 반음1개
2--- 코드 ---
C -- D -- E -- F -- G -- A -- B -- C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기타의 음계
* 음계 (scale)
--- 계이름 ---
도 -- 레 -- 미 - 파 -- 솔 -- 라 -- 시 - 도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 반음 1개 = 1프렛
* 온음 = 반음1개 + 반음1개
2--- 코드 ---
C -- D -- E -- F -- G -- A -- B -- C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베가스.
이걸 퀄러티를 높이려면..ㅡㅡ 돈이 많이 들기에....
▶ '뽕짝'스타일의 성가
부흥회나 성령대망회가 열리는 기도원및 중, 대형 교회 주변에는 성도들에게 각종 성가 음반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노점상들의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뽕짝'스타일의 노래들도 많이 있다. 어떤 성도가, 기존의 복음성가와 찬송가의 멜로디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던 것을 나는 들은 일이 있다. 거룩한 찬양들을 그런 천박한 흘러간 가요 스타일로 불러서 되겠냐는 의견이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내가 듣기로는, 어떤 성도중에는 '뽕짝'스타일의 성가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성도는, 일반 가요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된 가수를 통해 흘러나오는 성가를 듣고 심정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찬송의 도구인 음악의 스타일 자체에 거룩한 스타일이 따로 있고, 천박하고 거룩하지 못한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도대체 누가 세운 기준을 공식화해야 말썽의 소지가 없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한 성도에게 거룩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스타일의 노래가,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볼 때, 찬송의 외적 스타일만 가지고 거룩성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찬송의 외적 스타일(선율, 리듬, 창법, 연주형태) 자체는 선악을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선악의 판단의 대상은 도구가 아니고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식칼이, 그 날 밤 그 집을 침입한 강도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흉악한 도구로 돌변하는 것이다.
칼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칼을 누가 무슨 용도로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음악을 찬송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실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타락의 도구로 음악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우상을 섬기는 도구로 음악이 사용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행위자체를 가증히 여기실 것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놋이라는 땅에 에녹이라는 성을 쌓고 살았던 기사가 나오는데, 가인의 후예 유발에게서 악기(수금, 퉁소)가 유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를 떠난 가인의 족속들이 정체감을 잃고, 악기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개발하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허함만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악기가 가인의 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근거로 악기는 모두 악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다윗의 수금의 연주가 바로 그것이다. 다윗이 가인의 문화에서 유래한 수금으로 연주를 했을 때 사울에게 임했던 악신이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고 악신을 쫓으신 것이다. 이 때 다윗이 드린 찬송은 영적인 찬송이다. 악기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금, 은 패물들을 취하여 나왔다(출 3:2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을 짓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치장하는 귀걸이, 가락지, 목걸이들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출 35:20-29).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셔서 성막이 건축되도록 하셨다. 육체를 위해 사용되어졌던 장신구들이 거룩한 성전으로 열매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자.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세계 곳곳에서는 나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다른 스타일(문화)을 매개체로하여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구제하고 계심에 틀림없다.
출처 : 프라비 월드 "찬양하는 사람들"
▶ '뽕짝'스타일의 성가
부흥회나 성령대망회가 열리는 기도원및 중, 대형 교회 주변에는 성도들에게 각종 성가 음반을 판매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노점상들의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뽕짝'스타일의 노래들도 많이 있다. 어떤 성도가, 기존의 복음성가와 찬송가의 멜로디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던 것을 나는 들은 일이 있다. 거룩한 찬양들을 그런 천박한 흘러간 가요 스타일로 불러서 되겠냐는 의견이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내가 듣기로는, 어떤 성도중에는 '뽕짝'스타일의 성가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성도는, 일반 가요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된 가수를 통해 흘러나오는 성가를 듣고 심정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찬송의 도구인 음악의 스타일 자체에 거룩한 스타일이 따로 있고, 천박하고 거룩하지 못한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도대체 누가 세운 기준을 공식화해야 말썽의 소지가 없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한 성도에게 거룩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스타일의 노래가, 또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볼 때, 찬송의 외적 스타일만 가지고 거룩성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찬송의 외적 스타일(선율, 리듬, 창법, 연주형태) 자체는 선악을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선악의 판단의 대상은 도구가 아니고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식칼이, 그 날 밤 그 집을 침입한 강도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흉악한 도구로 돌변하는 것이다.
칼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칼을 누가 무슨 용도로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음악을 찬송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실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타락의 도구로 음악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우상을 섬기는 도구로 음악이 사용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행위자체를 가증히 여기실 것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놋이라는 땅에 에녹이라는 성을 쌓고 살았던 기사가 나오는데, 가인의 후예 유발에게서 악기(수금, 퉁소)가 유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를 떠난 가인의 족속들이 정체감을 잃고, 악기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개발하고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허함만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악기가 가인의 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근거로 악기는 모두 악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한다. 다윗의 수금의 연주가 바로 그것이다. 다윗이 가인의 문화에서 유래한 수금으로 연주를 했을 때 사울에게 임했던 악신이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고 악신을 쫓으신 것이다. 이 때 다윗이 드린 찬송은 영적인 찬송이다. 악기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금, 은 패물들을 취하여 나왔다(출 3:2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을 짓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치장하는 귀걸이, 가락지, 목걸이들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출 35:20-29).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셔서 성막이 건축되도록 하셨다. 육체를 위해 사용되어졌던 장신구들이 거룩한 성전으로 열매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자.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세계 곳곳에서는 나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다른 스타일(문화)을 매개체로하여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구제하고 계심에 틀림없다.
출처 : 프라비 월드 "찬양하는 사람들"
“안 받는 것 같아도 악인들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놈들, 강자들이 약자들 가져다 놓고 다 뺏어다가 잘 먹고 잘 지내는데, 왜 하나님은 놔두시나?’합니다. 어느 때 보면 그들이 죽을 때까지도 그러다가 죽습니다. ‘야, 어떻게 저렇게 놔두시나?’합니다. 성경에 이 문제에 대해서 선지자들의 많이 건의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보라. 끝까지 보아라. 갈 때 보던 나무가 올 때 없어졌느니라.” 누군가 베어 갔습니다. 사람을 두고 얘기했습니다. “갈 때 봤는데 올 때 보니까 없어졌다.” 나도 그런 것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하던 사람이 죽고, 멸망 받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그 기간이 있습니다. 그 형벌 받는 기간에 형벌 받고, 또 마지막 심판 때 심판 받고, 그렇게 해서 멸망을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다. 지금은 악인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 고통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의인들이 거기서 몸부림치고 힘들고 그 역겨운 고통을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의인은 연단을 받고, 의인들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단련을 받는 기간이다.” 세밀하게 살펴야지, 그냥 봐야지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왕들과 군대들과 법관들과 백성들을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꼭 행위대로 심판을 하시는데, 금방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판을 했으면 사람이 심판 받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해를 끼친 강도나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놔두시는가?’ 그러는데 나중까지 못 봤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 것을 모릅니다. 나중에 가서 알아보고는 ‘그 사람이 감옥 가서 지금 갇혀있구나. 하나님이 행하셨구나.’ 그것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나, 나아가서는 악한 자들이 겪는 것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못 봤다는 것입니다. 겪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겪고 사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겨우 걱정만 합니다. 당한 것을 가지고서 “너무 서운하다. 섭섭하다. 마음 아프다. 억울하다.”합니다. 의인들에게 가보면 그렇게만 하고 있고, 악인들은 두려움과 고통과 멸망으로 거의 돌아서 살고 있습니다. 거의 미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사형 선고 날이 있듯이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그 날 하나님이 끌어다가 무저갱으로 보내고, 흑암에 보내서 처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흑암으로, 멸망으로, 지옥으로 심판을 했어도 육신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이 그렇게 고생하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그대로 그냥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도를 내리고,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주었는데도 의인들은 당하고 ‘왜 저 사람은 심판하지 않고 놔두지?’합니다. 꼭 죽이고, 죽여 버리는 것만이 심판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1천 분의 1도, 1만 분의 1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라. 불쌍하니까 기도해주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대개 하나님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할 때에 한계를 주었습니다.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할 때 한계를 주었습니다. 그 한계를 어떻게 주시는고 하니, 바닷물이 한계를 넘치지 못하게 하심과 같이 했습니다.(잠8:29) 바닷물이 넘칩니까? 한계 이상을 못 올라옵니다. 그런데 심판할 때는 덮칩니다. 바닷물이 한계를 넘어옵니다. “한계를 넘어오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선생님도 늘 기도할 때 보면, 악인들이 쫓아다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지금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신경 쓰게 됩니다.” 그날 기도를 할 때에 바닷물이 나 있는 곳으로 좍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저쪽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올라오다 끝나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의 한계를 정해놨으니 걱정 말아라. 바닷물의 한계를 안 정해놓으면 조수할 때에 육지를 다 덮을 것이 아니냐? 조수할 때 밀물 썰물이 들어올 때 육지를 다 덮지 않겠느냐?” 그러나 한계를 정해놔서 시계추와 같이 더 이상 못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리로 썰물, 저리로 밀물할 때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못 옵니다. 그렇게 한계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한계 상황이 있는 존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악의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넘치지 못하게 했다. 한계이상 못 가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하셨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 2008년 5월 8일(목) 새벽말씀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새벽말씀)
“안 받는 것 같아도 악인들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놈들, 강자들이 약자들 가져다 놓고 다 뺏어다가 잘 먹고 잘 지내는데, 왜 하나님은 놔두시나?’합니다. 어느 때 보면 그들이 죽을 때까지도 그러다가 죽습니다. ‘야, 어떻게 저렇게 놔두시나?’합니다. 성경에 이 문제에 대해서 선지자들의 많이 건의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보라. 끝까지 보아라. 갈 때 보던 나무가 올 때 없어졌느니라.” 누군가 베어 갔습니다. 사람을 두고 얘기했습니다. “갈 때 봤는데 올 때 보니까 없어졌다.” 나도 그런 것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렇게 하던 사람이 죽고, 멸망 받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그 기간이 있습니다. 그 형벌 받는 기간에 형벌 받고, 또 마지막 심판 때 심판 받고, 그렇게 해서 멸망을 받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다. 지금은 악인이 심판을 받기 위해서 고통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의인들이 거기서 몸부림치고 힘들고 그 역겨운 고통을 받는 기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의인은 연단을 받고, 의인들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단련을 받는 기간이다.” 세밀하게 살펴야지, 그냥 봐야지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왕들과 군대들과 법관들과 백성들을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꼭 행위대로 심판을 하시는데, 금방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판을 했으면 사람이 심판 받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해를 끼친 강도나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놔두시는가?’ 그러는데 나중까지 못 봤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 것을 모릅니다. 나중에 가서 알아보고는 ‘그 사람이 감옥 가서 지금 갇혀있구나. 하나님이 행하셨구나.’ 그것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공산주의나, 독재주의나, 나아가서는 악한 자들이 겪는 것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못 봤다는 것입니다. 겪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겪고 사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겨우 걱정만 합니다. 당한 것을 가지고서 “너무 서운하다. 섭섭하다. 마음 아프다. 억울하다.”합니다. 의인들에게 가보면 그렇게만 하고 있고, 악인들은 두려움과 고통과 멸망으로 거의 돌아서 살고 있습니다. 거의 미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사형 선고 날이 있듯이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습니다. 그 날 하나님이 끌어다가 무저갱으로 보내고, 흑암에 보내서 처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흑암으로, 멸망으로, 지옥으로 심판을 했어도 육신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이 그렇게 고생하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그대로 그냥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도를 내리고,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주었는데도 의인들은 당하고 ‘왜 저 사람은 심판하지 않고 놔두지?’합니다. 꼭 죽이고, 죽여 버리는 것만이 심판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1천 분의 1도, 1만 분의 1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라. 불쌍하니까 기도해주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대개 하나님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할 때에 한계를 주었습니다.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할 때 한계를 주었습니다. 그 한계를 어떻게 주시는고 하니, 바닷물이 한계를 넘치지 못하게 하심과 같이 했습니다.(잠8:29) 바닷물이 넘칩니까? 한계 이상을 못 올라옵니다. 그런데 심판할 때는 덮칩니다. 바닷물이 한계를 넘어옵니다. “한계를 넘어오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선생님도 늘 기도할 때 보면, 악인들이 쫓아다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지금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신경 쓰게 됩니다.” 그날 기도를 할 때에 바닷물이 나 있는 곳으로 좍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저쪽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올라오다 끝나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악인의 한계를 정해놨으니 걱정 말아라. 바닷물의 한계를 안 정해놓으면 조수할 때에 육지를 다 덮을 것이 아니냐? 조수할 때 밀물 썰물이 들어올 때 육지를 다 덮지 않겠느냐?” 그러나 한계를 정해놔서 시계추와 같이 더 이상 못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리로 썰물, 저리로 밀물할 때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못 옵니다. 그렇게 한계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한계 상황이 있는 존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악의 한계를 정해놔서 더 이상 넘치지 못하게 했다. 한계이상 못 가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하셨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 2008년 5월 8일(목) 새벽말씀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새벽말씀)
교육부 카페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http://cafe.hananim.or.kr/lordflower/56128
수요예배 말씀에 나온 부활에 관한 성경구절입니다. 다운가능합니다.
그리고 말씀에는 고린도전서 15:45-54 라고 나와있는데 고린도전서 15:35-54로 변경되었습니다.
한글문서도 수정한 문서입니다.
이사야 26:19
요한복음 5:20-29
요한복음 11
요한복음 20
요한복음 21
로마서 8:5-8
고린도전서 15:35-54
데살로니가전서 4:16-17
히브리서 11:35
야고보서 2:17
야고보서 2:26
베드로전서 4:6
요한계시록 3:1
이사야 26:19
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요한복음 5:20-29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11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요한복음 20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1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로마서 8:5-8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5:35-54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야고보서 2:17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26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4:6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3:1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최종수정: 2009년 4월 9일 목 - 진리의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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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론에 관한 지침 내용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강의안이 이 말씀에 따라 수정이 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이 지침서들을 잘 숙지하시고 이에 맞게 강의의 방향을 잘 설정하셨으면 좋겠네요.^^
6. 독수리 비유
독수리 비유의 근본은 예수님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예수님이 보낸 중심자들을 독수리로 비유합니다. 선생님의 사명이 평신도는 아닙니다. 환난 때 더욱 근본을 배우며 지혜롭게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모세도 독수리, 여호수아도 독수리, 다윗도 독수리, 선생님도 예수님이 보냈으니 독수리와 같은 사명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할 때는 선생님에게 맞추지 말고 합니다.
7. 구름 비유
구름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도 구름이 있습니다.
8. 불 비유
불은 말씀이고, 주님이 곧 말씀입니다. 선생님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주니 그 말씀이 불입니다. 모든 자들에게 온전한 진리가 불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따라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9. 이단
성경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 믿으면 이단입니다.
섭리사 모든 말씀은 성경을 토대로 합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고 비진리로 가는 것이 이단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자기가 온 인류의 메시아다 재림주다 하는 자가 이단입니다.
10. 부활
부활은 영적 부활입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전해주면 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난 상황과 2000년 동안 부활의 영이 나타났으니 영적 부활입니다. 심정적 부활이며 정신적 부활입니다. 거듭남이 부활이며 새 시대로 오는 것이 부활이며 온전한 진리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사명 받고 사는 것이 그 얼마나 큽니까? 주님이 다 조정하고 계십니다. 교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년부터 전도 방향이 틀어지고, 기성들도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강의하면 모두 가 보게 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단들과 신흥 종교들과 싸우느라 갑옷을 입고 계급 달고 싸워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 교회밖에 못 만들었을 것입니다. 선생님만 주님을 꼭 잡고 애인같이 믿어오셨지 다른 종교들은 얼마나 주님을 악평했습니까? 섭리인들은 선생님으로 인해 주님의 애인이 되어 꺾어 온 것이고, 그들은 자기의 주장대로 가버렸습니다.
11. 역사론
4000년 구약 2000년 신약이 끝나면 주님의 재림 기간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치면 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육이 오시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2000년 동안은 그 영으로 온 것입니다. 이것이 강림입니다.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제2의 예수님입니다. 선생님은 그 주님을 맞고 온 것입니다.
12. 두 감람나무 두 증인
메시아는 엘리야와 같이 옵니다. 엘리야 영으로 강림하여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사명으로 왔습니다. 모두 각자 사명을 행하지만 시대의 중심자는 못됩니다. 중심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루터같이 개혁도 하고 예수님이 맡기신 사역을 하면서 두 감람나무로 역사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같이 가르치면 이상하게 보니 시대 두 감람나무만 가르쳐주면 됩니다. 계시록 11장 말씀대로 영과 육이 두 감람나무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모두 맞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승천하시고 영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앞으로 ‘재림’이라 해도 사명자가 말 안 하면 모릅니다. 다만 택한 자, 주님이 데려가는 자만 압니다. 재림은 지상의 육 있는 자들에게 한 번 있고 영계에서 영들에게 한 번 있습니다. 그 전에 일부 가르쳤던 것들이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13. 천지창조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고 했지, 창세기에 그때 하늘나라와 우주와 지구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선생님을 통해 새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과 우주와 하늘나라 천국의 역사가 같다는 말이 되니 하늘나라를 만들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단 말입니까?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따지는 것이 안 맞듯이 안 맞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생님께서 창세기를 안 밝히신 것입니다. 태초는 우주 창조의 때입니다. 성경에 나옵니다. 하늘나라를 창조한 것을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14. 세례요한
세례요한은 그 시대에 엘리야의 사명을 했다고 가르쳐주면 됩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영 이야기를 하기보다 사명을 강조해 주면 됩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과 하나 되지 못한 것도 성경에 나와 있으니 가르쳐야 합니다. 온전한 말씀을 들어야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되, 온전히 제대로 들어야 온전히 제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구원론도 다시 교정하고 계십니다. 더욱 못 박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15. 재림기간
메시아 재림은 2000년이 끝나고부터 재림기간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1978년부터 시작했으니 가르쳐야 합니다. 1978~1999년 까지 주님 모시고 온 기간이고, 2000년부터는 주님의 재림기간이라고 하면 됩니다. 2023년은 주님이 정하신 한 기간으로, 재림기간으로 보면 됩니다. 나머지는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세밀히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단상의 말씀으로 내적 30개론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은혜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루터 이후부터는 재림의 준비기간입니다.
16. 구원
이방의 구원은 성경에 나옵니다. 영계에서 대기하는 영들은 세상에서 소돔 땅같이 심판받고 온 자 다르고, 노아 때같이 심판받고 온 자 다릅니다. 수한 전에 심판받아 죽었기에 베드로전서 3장 19절 말씀과 같이 영옥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줍니다. 영계도 가짓수가 많습니다. 그 시대에 이미 아예 불신한 자는 지옥으로 갔고, 하나님을 믿고 받아들인 자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천년왕국은 주님 재림 후 영계에서 영들이 하고, 육계에서 육들이 합니다.
17. 수료식
30개론을 들으면서 주일말씀을 듣고 얼마 지나면 말씀 수료하게 하고, 다음은 성경을 읽게 해야 됩니다. 주일말씀은 3개월 이상 정식으로 들어야 정식 교인이 되게 됩니다. 주일말씀을 한 번만 들으면 안 됩니다. 절대 몇 번씩 들어야 됩니다. 말씀은 들을 때 들어야 합니다.
‘선생’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때가 되면 선생이 되어야 하리라.” 했으니 그 말에 따르는 것입니다. 또 총회장 목사님으로 해야 구분이 되고 외부와 연결도 잘 되어 집회도 다니고 전도하기 쉽습니다. 말씀은 은혜와 말씀과 교리 중심이 됩니다. 30개론 근본은 주님이 선생님에게 역사하여 행하시니 사람들이 선생님의 육신을 보고 ‘주님’이라 한 것입니다. 확실히 전하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밀려올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인이나 기타 사인은 교회 본당이 아닌 교역자실에 두면 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가 볼 수 있으니 굳이 교회에 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못 보니까 사진으로 걸어 놓고 봐야 합니다.
다 고쳐야 새롭게 됩니다. 잘못된 것을 교정해야 새로운 발전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선생님을 통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안 주시면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하면 일반인도 많이 와서 보게 될 것입니다. 종전같이 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한정된 위치밖에 못 갑니다. 선생님 작품은 교육상 보여주면 되고, 사진은 선생님이 살아서 한국에 계시니 걸지 마십시오. 무리해서 행하면 부담이 오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면 기독교에서도 많이 오니 전도하기가 좋습니다. 요즘 전도 많이 되고 있으니 의식 말고 말씀을 듣게 해야 됩니다.
30개론 중에 의문스러운 것은 잘라서 전하면 됩니다. 30개론은 확실히 선생님께서 산에서 예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선생님이 재림주가 되어 주님 상관없이 왔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주일말씀에 나갔습니다. 어떤 자가 선생님께 “주여”라고 해서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보니 예수님이 선생님 옆에 있었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했습니다.
너무 복잡한 말씀은 잘라서 전해야 합니다. 교역자들이 먼저 제대로 알고 강사들도 그에 맞춰 전체가 그렇게 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교정해 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8개월 동안 외쳤으니 선생님의 심정을 제대로 알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시대에 따라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주님이 행하시는 역사를 하라고 보내셨기에 그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한, 두 교회로 끝났을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한 교파를 낳은 것입니다. 구약 때같이 아브라함 보고 ‘주여’하듯 하면 안 됩니다. ‘주’라는 것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주’라고 하면 주님이라고 하는 격과 같이 들려 헷갈립니다. 선생님은 교단의 창시자이고 신앙의 부모로 맞은 입장입니다. 주님이 선생님의 신랑이 되십니다. 모두 이를 중심해야 됩니다. 애인 사이에서는 여자도 주인이 되지만 남자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느 때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오직 예수님의 뜻대로 간다.
선생님에 대한 증거는 많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셨기에 옳은 말씀이며 확실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해주니 세계적으로 선생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기갈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 자랑은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자랑으로 돌리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역사로 가야 됩니다. 영의 불을 붙이고 해야 합니다.
어색한 것은 다 잘라서 강의하면 됩니다. 요즘은 단상의 말씀이 곧 강의안입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기성이 잘못 보던 것을 바로 보고 확실히 가르쳐주면 됩니다. 모두들 잘 이해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앞으로 주일, 수요 말씀을 통해 내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호리라도 틀리지 않게 글 교정하듯이 교정해 나갈 것입니다.

예수님 육 출현 영의 강림 (2000년 동안 나타나 행하심) 마지막 재림(다시 영으로 강림)
심난한 가운데 글을 쓰든지, 무슨 일을 행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일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복음을 향해 행하신 일입니다. 더 많은 자들을 구원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역사를 펴시고 돌아가신 후, 2000년 동안 영으로 계속 나타나 강림하여 행하시던 예수님은 마지막 재림 때 영으로 다시 강림하여 역사하십니다. 바로 이 시대입니다.
육이 온 것은 초림이며 영이 온 것이 재림입니다. 예수님을 맞은 것이 부활이며, 휴거이며, 지상천국이며, 재림입니다.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은 것이 지상천국입니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교정해 나갈 것입니다. 하루 이틀 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차근차근 완전히 체계를 잡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나오시면 잘 정리하여 가르쳐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신년에는 일절 다 정리해서 가르치고, 지금 가르치고 있는 모든 자들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방향에 맞춰 가르쳐야 됩니다. 주일, 수요 말씀이 깊게 나옵니다. 삶의 진리로 빛이 납니다. ‘태양아 멈추어라’ 가 문제가 아니라 먼저는 심령에 불을 붙여야 됩니다.